[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단종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입력 2021-04-21 03:00수정 2021-04-21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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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의 작품으로 알려진 이 시조는 조선 후기 김천택이 펴낸 ‘청구영언’에 실려 있습니다. 애절함이 가득한 이 작품에서 ‘고운 님’은 조선 제6대 왕 단종(1441∼1457·그림)을 의미합니다. 왕방연은 세조의 명을 받아 단종에게 사약을 집행한 금부도사였습니다. 금부도사는 범죄자 처벌을 담당하던 의금부의 책임자를 뜻합니다.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승하하자 불과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극적 운명을 맞이합니다. 그는 숙부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강원 영월 청령포에 유배됐습니다. 한명회를 업은 수양대군은 안평대군, 금성대군을 제압하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는 김종서와 사육신(死六臣)마저 제거했습니다. 권력을 거머쥔 수양대군은 급기야 단종에게 사약을 내렸고 이렇게 조선 전기 최대 비극인 ‘계유정란’은 막을 내렸습니다. 당시 영월의 호장(戶長)이던 엄흥도가 시신을 몰래 수습해 현재 장릉 자리에 안장했습니다.

왕방연의 시조에는 명을 집행한 한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이 녹아있습니다. 큰일을 겪은 후 관직에서 물러난 왕방연은 중랑천가에서 배나무를 키우며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단종의 제삿날이면 자신이 수확한 배를 올리고 영월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경기 남양주 먹골배의 유래라는 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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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에 의해 노산군으로 격하된 단종은 1698년 숙종에 이르러 정식으로 복위됩니다. 어린 남편의 비극적 죽음을 가슴에 안은 단종비 정순왕후의 삶도 기구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친정 식구들마저 모두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으니 애끊는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81세에 세상을 뜬 정순왕후가 묻힌 곳이 왕방연이 여생을 보낸 남양주 땅인 것은 우연일까요. 훗날 숙종은 정순왕후의 무덤에 사릉(思陵)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습니다. 죽어서도 단종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단종이 어진(御眞)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어진은 임금의 얼굴을 그린 그림입니다. 14일 국가표준영정 100호로 지정된 단종의 어진이 공개됐습니다. 표준영정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한 영정을 뜻합니다. 곤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쓴 단종의 모습이 처음 공개된 겁니다. 조선시대 임금 가운데 생존 시 만들어진 어진은 태조, 영조, 철종뿐이고 세종과 정조의 어진은 후대에 추사(追寫·사후에 그리는 것)된 그림입니다.

권오창 화백이 제작한 단종 어진은 여러 역사적 고증을 수렴한 결과물입니다. 권 화백은 12세 때 왕위에 오르고 3년 뒤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15세 때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실록에 있는 단종의 용모 기록과 고조할아버지인 태조, 숙부인 세조의 얼굴을 참고해 재현했다고 합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란 말이 있습니다. 붉은 꽃도 열흘을 넘기기 힘들고, 권세는 십 년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왕위를 빼앗고 사약을 내린 숙부 세조의 골상으로 다시 태어난 단종의 어진을 보며 일장춘몽 같은 인생의 덧없음을 돌아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피플in뉴스#신문과놀자#nie#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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