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화사업으로 ‘민둥산 오름’은 옛말… 나무숲과 초지 어우러져 장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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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오름 이야기’ <3> 인공림 조성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제주 제주시 구좌읍 다랑쉬오름은 1980년대 대대적인 나무 심기로 인공림이 조성됐는데 자연 초지와 구별되면서 부조화의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제주 제주시 구좌읍 다랑쉬오름은 1980년대 대대적인 나무 심기로 인공림이 조성됐는데 자연 초지와 구별되면서 부조화의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원형분화구를 갖춘 화산체가 웅장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름 탐방로가 S자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워낙 가파른 탓에 오르다 보면 호흡이 거칠어진다. 정상에 이르러 거대한 원형 분화구를 마주하는 순간 신비한 풍광에 매료된다. 사방으로 막힘이 없는 장쾌함이 최고조에 이른다.

지난달 31일 찾은 다랑쉬오름은 입구부터 깔끔하게 정비된 모습으로 탐방객을 맞았다. 탐방로가 아닌 전체 외형을 찬찬히 훑어보니 식생이 특이했다. 한쪽은 인공으로 조림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반면 다른 쪽은 억새와 띠 등 초지로 뒤덮여 있었다. 자연의 부조화가 이런 것일까. 인공으로 조림한 삼나무 숲 음지에는 어린 참식나무, 상산나무 등이 일부 보일 뿐 식생이 단순했다. 가지치기나 솎아베기도 이뤄지지 않는 등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 오름에 대규모 인공림 조성


다랑쉬오름은 1964년 4만 그루의 곰솔이 처음으로 심어졌다. 이후 20년 동안 조림이 중단됐다가 1985년 삼나무 1만7000그루를 시작으로 나무심기가 재개돼 2001년까지 모두 34만여 그루가 심어졌다. 수종은 곰솔, 삼나무를 비롯해 편백, 비자나무, 왕벚나무 등으로 다양했다. 주로 1980년대 집중적으로 나무심기가 진행돼 숲은 울창했지만 오름 전체 경관으로 보면 ‘서양드레스에 저고리를 껴입은 것’ 같은 어색한 느낌이다.

제주시 조천읍 웃밤오름 역시 인공림과 자연림의 구분이 확연했다. 오름을 오르면서 인위적으로 식재한 삼나무 숲을 벗어나자 남산제비꽃, 현호색, 줄딸기, 개구리발톱, 자주괴불주머니 등 들꽃이 앞다퉈 꽃을 피웠다. 국수나무, 둥굴레, 천남성 등에선 연두색 잎이 돋아났다. 빽빽한 삼나무 숲에서는 볼 수 없는 종 다양성이 한눈에 드러났다.

오름에 인공림이 조성된 곳은 다랑쉬오름이나 웃밤오름만이 아니다. 방목지나 농경지로 쓰이는 오름, 한라산국립공원구역 오름을 제외한 대부분에서 나무심기가 이뤄졌다. 산림 관리 및 보존을 위해 산지는 공익용, 임업용으로 나뉜다. 공익용은 임업 생산과 함께 재해 방지, 수원 보호 등을 하는 산지이고, 임업용은 산림자원 조성과 임업 경영기반 구축을 위한 산지다. 도 관계자는 “오름 가운데 공익용이 35곳, 임업용이 29곳이 있으며 대부분이 공유지”라며 “공유지 외에도 인공림으로 조성한 사유지 오름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인공림 조성 이전 오름의 식생은 초지나 들풀이 점유하고 있었다. 고려 말 몽골 지배를 받으며 제주지역에 틀을 갖춘 방목지가 조성되면서 오름의 나무들이 베어지거나 불태워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국영 목장이 보다 정교하게 대규모로 운영되면서 해안에서 해발 600m 이내 오름의 초지화는 가속화됐다.

소와 말을 키우는 우마방목을 위해 매년 정월대보름을 전후로 ‘들불 놓기’를 함으로써 씨앗이 발아해 뿌리 내리는 것을 막았다. 제주지역 목축문화 전문가인 강만익 박사(제주일고 교사)는 “병해충을 없애기 위해 묵은 풀을 태워버리는 들불 놓기는 우마방목을 위한 필수 작업의 하나였다”며 “기록상으로는 193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들불 놓기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광복직후 제주지역을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으면서 ‘초토화 작전’이 벌어졌던 제주 4·3사건도 오름에 나무가 사라진 요인이었다.

● 녹화사업으로 오름 경관 변화


고려이전 오름의 식생은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등의 상록활엽수이거나 해발고도가 다소 높은 오름은 서어나무, 졸참나무 등의 낙엽활엽수가 많은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선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제주시 구좌읍 용눈이오름처럼 민둥산이었던 오름은 1973년부터 1987년까지 치산계획(녹화사업)에 따라 집중적으로 인공조림이 이뤄졌다.

주로 외래수종인 삼나무를 비롯해 곰솔, 편백 등 상록수가 대부분이었다. 벌거숭이였던 제주시 연동지역 노루손이오름, 검은오름 등은 삼나무, 곰솔, 편백이 대량 식재된 이후 지금은 능선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도로 개발이나 건축 등 각종 개발행위로 파헤쳐진 오름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방사업을 벌인 적도 있다. 1996년 제주시 구좌읍 둔지봉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14개 오름에 인공림을 조성했다.

화산회토로 이뤄진 오름의 토양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에는 열악한 환경이다. 토양 비옥도가 평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스코리아(scoria)’로 불리는 화산쇄설물로 이뤄진 오름은 토양 깊이가 50cm 정도에 불과하고 유효 성분도 적다. 그래서 인공 조림한 오름의 나무를 보면 뿌리가 옆으로 뻗는 등 나름의 생존방식으로 성장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고석형 박사는 “제주의 오름은 화산 폭발 시기나 분출 암석의 종류가 달라서 토양 역시 특수하다”며 “앞으로 오름의 수종을 바꾼다면 오름 토양에 대한 조사를 벌인 뒤 수종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향후 관리 방안 고심


다양한 굴곡을 겪으면서 숲이 만들어진 오름은 산림자원 구축과 동식물 서식, 이산화탄소 흡수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하지만 특정 수종 중심의 강제적인 녹화사업으로 ‘경관의 획일화’가 발생했고, 오름이 위치한 해발 고도와 기후, 토양 등에 따른 식생의 독특성과 다양성을 막아버렸다.

오름 인공림 조성이후 관리에 따른 논란은 여전하다. 조림 후 정기적으로 가지치기, 간벌 등의 작업을 하면서 건강한 숲을 만들어야 경제적인 목재로 성장하고 지피 식생도 다양해진다. 그러나 자연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제주 오름탐사동호회 관계자는 “인공으로 숲을 조성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했다”며 “자연 그대로 숲이 변하는 천이현상이 진행되도록 그대로 놔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 때문에 최근에는 더 이상 오름에 조림사업을 하지 않고 도심지나 마을 공유지를 대상으로 숲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마저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로 산림 관련 예산이 대거 투입되는 바람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주시 산림 관계자는 “오름 숲을 관리하려고 가치치기라도 하면 금방 항의가 들어온다”며 “조림을 한 지 50년이 되면 벌채를 해서 경제적으로 활용하고 후계림을 조성해야 하는데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시#녹화사업#민둥산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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