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고립된 아이, 이장님이 손내밀다

이윤태 기자 , 유채연 기자 입력 2021-03-04 03:00수정 2021-03-04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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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폭설 이겨낸 훈훈한 이웃사랑
골목은 삽으로 치우고… 큰길 눈은 ‘삽날’ 트럭으로 강원 지역에 폭설 대란이 일어난 1일 오후 3시경 속초시 노학동에서 자율방재단 단원들이 도로에서 눈을 치우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자율방재단은 제설 삽날을 장착한 트럭을 몰고 속초여고 앞에 쌓인 눈도 치우고 있다. 속초시 지역자율방재단 제공
“10개월밖에 안 된 어린 애기가 그 추운 날 쫄쫄 굶으며 차에 갇혀 있다고 하니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걱정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집으로 오라고 했지.”

강원 양양군 서면 공수전리에서 이장을 맡고 있는 박용관 씨(61)는 1일 폭설 대란이 벌어졌던 날을 떠올리며 “애가 아프다는데 살려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당일 박 이장이 사는 자두마을도 오전부터 눈이 쏟아져 도로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인근 도로에선 모든 차가 멈춰선 상황이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이들을 도우러 나섰다.

“급한 대로 차들은 도로변으로 옮기고, 차에 있던 열댓 명은 마을회관과 초등학교로 대피시켰지. 근데 9시쯤 파출소에서 전화가 옵디다. 애기 상태가 안 좋다는 거예요. 어쩌겠어, 살리고 봐야지. 마을회관까지 아이 부모가 역주행을 해서 겨우 오고, 내가 삽으로 길을 내면서 집에 데려왔어요. 데운 우유를 먹이니 그제야 혈색이 돌아오더군요. 어디 보내기도 그래서 우리 집에서 부모랑 아이를 하룻밤 재웠지. 다음 날 서울에 잘 도착했다며 연신 ‘고맙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1일 폭설 대란으로 혼란이 벌어진 강원도는 길에서 고립된 시민들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도 큰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우리네 이웃들은 주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눈 폭탄이 쏟아지는데도 밖으로 나가 처음 보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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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 활동하는 한 ‘자율방재단’도 1일 큰 공을 세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후부터 현장에 나가 깊은 밤까지 눈을 치웠다. 최윤선 부단장(51)은 이날 방재단의 1t 트럭 앞에 ‘제설 삽날’을 달고 교동과 노학동 등 곳곳을 누볐다. 제설 삽날은 눈을 길가로 밀어낼 수 있는 장비로, 제설 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운 좁은 도로에서 큰 효과를 발휘한다. 2, 3일에는 단원 80여 명과 함께 삽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고 한다.

최 부단장은 “우리 단원은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거나 지역 소상공인, 은퇴자들로 구성돼 있다”며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을 돕는 건 같은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이다”라며 겸양했다.

소셜미디어에도 폭설로 고난에 처한 시민들을 도운 ‘숨은 영웅들’의 사연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20, 30대로 추정되는 한 여성은 “경기 화성에서 속초까지 8시간이 걸렸는데 눈길에 차바퀴가 헛돌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며 “그런데 지나가던 시민들이 차를 세우고 내리더니 같이 뒤에서 도로변으로 차를 밀어줬다. 너무 감사한 분들”이라고 글을 올렸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유채연 기자
#폭설#고립#이웃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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