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주라더니…개미 울리는 ‘주식 리딩방’ 정체 알고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2일 1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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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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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전화번호만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회사원 김모 씨(34)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투자파트너스’라는 유사투자자문사를 알게 됐다. 이 회사 직원은 김 씨에게 전화를 걸어 가입비 530만 원을 내면 매달 10~25%의 수익을 올릴 주식 종목과 매도, 매수 타이밍을 알려준다고 했다.

김 씨는 2년만 투자하면 외제차에 주택 구입 자금까지 뽑을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었다. 가입비 530만 원을 입금한 뒤 4개월간 4200만 원을 투자해 시키는 대로 주식을 사고팔았다. 하지만 900만 원이 사라진 건 순식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자문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고 연락했지만 가입비를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대박을 좇던 꿈은 한순간에 악몽이 됐다. 주식으로 돈 잃고 거액의 가입비까지 떼인 것이다.

주식 투자 열풍을 타고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고수익을 미끼로 거액의 가입비를 받고 개인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이른바 ‘주식 리딩방’(불법 금융투자업체)이 활개를 치고 있다. 금융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도 유사투자자문사를 손쉽게 차릴 수 있는 만큼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금융당국은 당부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유사투자자문사 1841개 가운데 민원이 제기된 351곳을 점검한 결과 49곳(14%)에서 불법 혐의를 적발해 수사기관에 통보했다고 22일 밝혔다. 불법 적발 건수는 2018년 26개, 2019년 45개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유사투자자문사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금융투자 상품과 관련한 조언만 할 수 있을 뿐 일대일로 자문에 응하거나 투자 매매, 중개 등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금감원 점검 결과 카카오톡 유료 대화방을 개설해 일대일 상담을 해주거나 매매, 중개를 한 사례가 많았다. ‘목표 수익률 4000%’ 등 허위·과장 광고를 하는 곳도 있었다.

A업체는 비상장회사 주식을 주당 12만 원에 사들인 뒤 리딩방을 개설했다. 해당 주식의 목표 주가가 50만~60만 원이며 회원들에게 우선 매수 기회를 주겠다고 꼬드겼다. 하지만 회원들이 실제로 주식을 매입해 주가가 뛰자 이 업체는 주당 25만 원에 매도해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 회원들은 손실을 입었다.

B업체는 인터넷방송에서 비상장 주식을 추천한 뒤 매수 자금이 부족한 회원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준다고 선전했다. 실상은 자회사인 대부업체를 통한 고금리 주식담보대출 알선이었다. 주식 계좌를 맡기면 훨씬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게 해주겠다며 투자자의 공인인증서와 비밀번호를 받아낸 뒤 90% 가까운 손실을 낸 업체도 있었다.

금융감독 당국은 해마다 비슷한 피해가 반복되는 것은 대박을 꿈꾸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노린 불법 유사투자자문사의 수법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대일 유료 리딩방을 만들고 거액의 가입비를 내기 어려운 사람에게 카드 할부를 유도하는 곳도 있었다.

유사투자자문사는 교육 이수 등 일정 조건을 갖추면 금융위원회 사전 신고만으로 설립할 수 있다. 자본금, 전문인력 확보 같은 제한이 없어 전문성이 떨어지는 곳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 인가를 받거나 등록한 금융회사가 아니어서 소비자가 피해를 보더라도 한국소비자원에 직접 피해 구제를 신청해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사투자자문사에 이용료를 내기 전에 환불 조건 및 방법, 회수 가능성을 확인하고 해지 통보에 대한 녹음 등 증거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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