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연구원 ‘산지 난개발’ 보고서
허가 44% 펜션 등 주택건설 관련, 업자들 法허점 악용 ‘쪼개기 개발’
“산지 허가때 경사도 기준 등 강화”
3일 오전 10시 37분경 경기 가평군 가평읍. 빗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야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2층 높이의 펜션을 덮쳤다. 1층 기둥이 무너진 건물은 마당에 있던 차량 위로 폭삭 주저앉았다. 테라스에 파라솔을 펴고 휴가철 분위기를 냈던 펜션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 사고로 펜션을 운영하는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 중부지방에서 6월 24일부터 시작된 54일간의 최장 장마로 인한 산사태 등으로 최소 43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비극은 무분별한 산림 개발이 한몫을 한 것으로 지목됐다.
경기연구원은 최근 공개한 ‘산지 소규모 주택 난개발 대책 보고서’에서 “2015년부터 5년간 경기도에서 각종 개발로 여의도 면적(2.9km²)의 약 40배 규모의 산림이 없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경기도 산지전용 허가 건수는 3만9744건이다. 전체 허가 건수의 44.4%(1만7640건)는 펜션과 전원주택 등 소규모 주택 건설로 나타났다. 단독주택 중 표고(높이) 100m 초과 입지하는 주택 비율은 포천이 84.3%, 양평 39.3%, 남양주 26.1% 등으로 높았다. 산에 여러 주택이 들어서면 성절토가 횡행하고, 사면옹벽을 무리하게 건축하면서 폭우와 지진 발생 시 산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소규모 주택 난개발이 이어지는 원인으로 ‘느슨한 법망’을 지목했다. 주택법상 단독주택은 30채 이상, 공동주택은 30가구 이상만 사업계획승인 대상이다. 이 때문에 개발업자들은 소규모로 쪼개기식 개별건축을 승인 받는다. 부동산 값이 오를 때까지 나대지로 놔두는 경우도 많다. 보고서는 “산지관리법이 허용하는 경사도 기준 25도를 악용해 23∼24도의 가파른 비탈에 시설을 짓는 경우가 많고 표고도 기준 역시 허술하다”고 주장했다. 연천군과 산사태가 가장 많이 발생한 안성시는 최근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해 산지 개발 경사도 기준을 20도에서 25도로 완화했다. 산사태 인명사고가 있었던 가평군도 2014년 산지 경사도를 18도에서 25도로 완화하도록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했다.
보고서는 개발행위허가제도의 물리적 기준을 강화해 난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경기 용인시에서는 조례를 통해 2500m² 면적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 무조건 6m 이상의 도로폭을 만들어야 한다. 평택시도 1000m² 이상 5000m² 이하 공장을 조성할 경우 5m 이상 도로폭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개발행위 허가 운영지침에는 5000m² 이하 면적을 개발할 때 4m 이상 도로폭만 조성해도 된다.
산지와 구릉지, 경사지 등의 개발기준 및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산지 등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개발행위 허가 시 산지 경사도를 25도로 지정한 포천시 가평군 등 8개 시군에 대해 20도로 경사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흙을 깎거나 쌓는 등 토지 모양을 변경할 경우 비탈면 수직 높이를 6m 이하로 낮추고 옹벽 높이도 3m로 제한해야 한다.
이외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지 개발 과정에서 진행하는 환경영향평가와 사전재해영향성 검토를 현재 기준에 맞게 강화해야 하고, 소규모 개발은 대부분 시군승인 사안이므로 시군과 의회 등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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