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보일러 방 잠자던 소방관 2명 참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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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농가주택 방바닥 틈사이… 일산화탄소 스며들었을 가능성
농촌 화재, 화목보일러 원인 많아… 점검대상 빠져 ‘안전사각’ 지적

28일 오전 소방관 2명이 숨진 강원 춘천시 북산면의 한 농가주택 별채 외벽에 설치된 화목보일러 연통(위 사진 선 안). 별채 바로 옆 보일러실에는 땔감을 때 가동하는 화목보일러가 있다(아래 사진). 춘천=뉴시스·독자 제공
28일 오전 소방관 2명이 숨진 강원 춘천시 북산면의 한 농가주택 별채 외벽에 설치된 화목보일러 연통(위 사진 선 안). 별채 바로 옆 보일러실에는 땔감을 때 가동하는 화목보일러가 있다(아래 사진). 춘천=뉴시스·독자 제공
강원 춘천에서 쉬는 날을 이용해 동료들과 농가주택에 묵었던 소방관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농가에서 많이 쓰는 화목(火木)보일러에서 흘러나온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강원 춘천경찰서 등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경 춘천시 북산면에 있는 한 주택의 별채에서 홍천소방서 소속 김모 소방장(44)과 권모 소방위(41)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함께 있던 소방서 동료들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숨진 소방관 2명은 27일 같은 소방서에 근무하는 구조대원 2명과 행정직원 1명, 119안전센터 대원 3명 등과 이 집을 방문했다. 이 가정주택은 함께 간 동료의 부모가 사는 곳으로 알려졌다.

해당 주택은 본채와 별채, 창고 등 3개 건물로 이뤄져 있다. 소방서 동료 8명은 27일 밤 12시까지 54m²(약 16평) 남짓한 본채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숨진 2명은 이후 약 15m 떨어진 별채에 가서 휴식을 취하다가 잠이 들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 별채에서 가동해왔던 화목보일러가 사고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벽에 붙어있는 테라스에 있는 화목보일러에서 땔감을 때면 열기가 구들장으로 흘러들어가 방을 데우는 구조다. 경찰이 28일 1차 현장감식을 벌인 결과 연통 등이 절단되거나 이물질에 막힌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보일러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가 방바닥 등에 생긴 균열 등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골 농가에서 많이 쓰는 화목보일러는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따로 없어 겨울철 화재에도 취약하다. 소방청이 제공한 ‘최근 6년간 화목보일러 화재 현황’에 따르면 2014∼19년 화목보일러로 인한 화재 건수는 2292건이다. 발화 요인으로는 ‘부주의’가 64.9%(1489건)로 가장 많고, ‘기계적 요인’이 25%(591건)로 뒤를 이었다. 지역난방 관계자는 “화목보일러는 가스를 이용하지 않아 가스 공급업체의 점검 대상에서 빠져 있다. 자주 ‘안전관리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화목보일러는 당국의 관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설치할 때 안전시설을 갖추려는 노력이 다소 부족한 경향이 있다”며 “설치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해마다 바닥이나 연통에 균열이 발생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구조대 특채로 2009년 임용된 김 소방장은 지난해 11월 19∼21일 독도 소방헬기 추락 사고 당시 수중 수색활동 임무를 수행한 ‘베테랑’ 구조대원이었다. 스킨스쿠버 마스터 자격증을 갖췄으며 2015년 화재 안전 유공 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2005년 임용된 권 소방위도 2011, 2015년 두 차례 유공 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동료들은 “근면성실하고 타의 모범이 됐던 소방관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춘천=이소연 always99@donga.com·이청아 / 고도예 기자
#강원 춘천#화목보일러#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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