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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그림자로 살던 나를 세상으로 내보내줘”

입력 2020-03-05 03:00업데이트 2020-12-0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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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 내 삶 속 동아일보]
<2> 불법체류 ‘그림자 아이’ 멍에 벗은 페버”
‘그림자 아이’에서 벗어난 페버 씨가 현재 재학 중인 광주의 한 대학 근처 카페에서 동아일보를 읽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제 ‘진짜 한국인’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194cm 장신의 흑인 청년에게 사람들은 대개 영어로 말을 건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다. 삶이 무너질 위기를 맞은 것은 2017년 4월. 열일곱 소년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이지리아로 추방 명령을 받고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2008년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가 체류 기간을 연장받지 못해 강제 출국당한 뒤 남은 가족들도 미등록(불법체류) 상태가 됐던 탓이다.

이 사연이 동아일보에 보도되자(2017년 5월 17일자 A1·8면 ‘그림자 아이들’) 시민 1650명이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고, 페버 씨(20)는 그해 6월 극적으로 석방됐다. 이듬해 법원이 추방 명령 취소 판결을 내렸다. 현재 그는 대학 재학 중이다. 최근 만난 페버 씨는 “동아일보에서 저를 한 명의 ‘사람’으로 보고 세상에 알려준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 “편견없이 듣고 끈질기게 써준 기사… 난 삶의 기회를 얻었다”
본보는 2017년 5월 부모의 미등록(불법체류) 신분 상태를 물려받아 병원이나 학교에 갈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인 ‘그림자 아이들’의 사연을 다뤘다.
“변호사도 거의 포기한 상태였고 저도 다 내려놨었는데….”

최근 광주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페버 씨는 취업준비생으로서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18년 가을 전문대 기계과에 입학한 그는 올여름 졸업을 앞두고 있다. 취업을 하고 성실히 5년을 보낸 뒤 귀화 신청 자격을 얻는 것이 그의 1차 목표다.

○ 학업에 아르바이트까지… “힘들지만 감사”


지난해 11월 페버 씨는 산업기술 자격증을 땄다. 전 학생이 참여하는 교내 캡스톤디자인대회(공업계열 학생들이 작품을 설계, 제작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그가 이끈 팀은 은상을 받았다. 학점도 놓치지 않았다. ‘한국 문학’ 같은 교양 과목부터 현장 실무를 다루는 과목까지 모두 만점을 받았다.

공부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일주일에 사흘 오전에는 단거리 마라톤 준비를, 이틀은 편의점에서 밤샘 아르바이트를 한다. 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일하면 월 40만 원을 번다. 엄마는 “학기 중에는 공부에 전념하라”고 권하지만 가족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다. 그는 “주말마다 가족들이 있는 전남 순천에 가는데 당일 유통기간이 끝나는 빵이나 삼각김밥을 동생들 간식으로 챙겨갈 수 있어서 일석이조”라며 웃었다.

물론 힘들다. 그래도 힘들지 않다. 부모의 미등록자 신분을 물려받아 대학 입학이나 정식 아르바이트는 꿈꿀 수 없던 시절, 남몰래 공장에서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15시간씩 일하던 시절, 그렇게 일하다 들켜서 갇혀 있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은 매 순간이 기적 같다.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시간 내서 영어 공부도 더 해보려고요. 사람들이 영어로 물어보기도 하는데 실제론 잘 못하니 민망해서….”

○ “제 뒤에 있는 2만 명에게 좋은 선례 되고파”

본보 보도 이후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페버 씨는 큰 키에 운동과 한국어까지 잘하는 멋진 친구로 또래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며 그가 미등록 신분인 사실이 알려지자 피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범법자’나 ‘불쌍한 친구’로 여긴 것이다. 페버 씨는 “속상하기도 했지만 제가 어떤 모습이든 옆자리를 지켜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으니 괜찮다”며 당시의 아픔을 털어냈다.

외국인보호소에서 나온 뒤 난민 비자 대신 대학에 가서 학생 비자를 받는 길을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부해서 취업하고 결혼도 하고, 불쌍하거나 위험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꿈이다.

첫 단계로 페버 씨는 용접 분야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인력 부족을 겪고 있지만 제조업에 필수적인 직무여서 더 좋단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해 자신에게 쏟아지는 오해나 편견을 조금 더 지우고 싶어서다.

자신만을 위한 꿈은 아니다. 아직 페버 씨를 제외한 가족들은 정식 신분을 획득하지 못했다. 동생들에게 좋은 표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그림자 아이들’도 중요한 이유다. 페버 씨는 “동아일보 기사를 읽고서야 저랑 비슷한 아이들이 2만 명이나 있다는 걸 알았다”며 “첫 사례인 제가 잘해야 나중에 다른 ‘그림자 아이들’이 합법적으로 살 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회 되기를”


페버 씨는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게 두려워 방송사 출연을 거절한 적이 있다. 행여나 튀어 보일까여서다. 하지만 “첫 ‘그림자 아이들’ 기사부터 대학 입학까지 한 단계씩 상황이 나아갈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줘서 놀랐다”며 “끈질기게 써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마지막으로 동아일보에 바라는 점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미 제 인생과 저랑 비슷한 아이들의 삶에 희망을 주셨는데 또…” 하고 머뭇거렸다. 재차 묻자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거리를 걷다 보면 아직도 겉모습에 쏟아지는 시선을 느낀다. 한국이 좀 더 겉모습이나 집단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회가 되는 데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그림자 아이들’ 기사처럼 앞으로도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추측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담아내는 언론사가 돼 달라”고 바람을 전했다.

광주=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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