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합의, 피해자 권리와 무관”… 한일 충돌 피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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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헌소 3년 9개월만에 각하
“추상적-선언적 내용의 구두 합의, 조약과 달리 법적 구속력 없어”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일치 각하
헌소 할머니 “잘못된 합의…” 눈물, 정부 “피해자 명예회복 지속 노력”

헌법재판소가 27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헌법소원을 각하한 가장 큰 이유는 이를 외교적 협의 과정에서 나온 정치적인 합의라고 봤기 때문이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과 달리 구속력이 없는 ‘합의’여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위안부 합의는 ‘조약’ 아닌 ‘정치적 합의’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 당시 정부가 ‘최종적’이라고 밝힌 합의문에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지원 재단에 100억 원을 출연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외교적으로 보호받을 권리, 재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형식적, 실질적으로 조약보다는 합의의 성격을 띠고 있어 헌법소원 심판으로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툴 수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먼저 조약이 ‘구두 형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위급 협의에서 진행되던 합의 내용을 한일 외교부 장관이 구두로 확인했고, 한일 정상이 전화 통화로 이를 추인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일반적인 조약이 서면의 형식으로 체결되는 것과 달리 이 사건 합의는 구두 형식의 합의”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또 합의를 발표할 때 제목으로 한국은 ‘기자회견’, 일본은 ‘기자발표’라는 용어로 각각 달리 사용한 만큼 통일된 명칭을 주로 쓰는 조약과는 다르다고 봤다. 헌재는 “위안부 합의는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의 동의 등 헌법상의 조약 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

헌재는 실질적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위안부 합의 중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과 일본 정부의 출연에 관한 부분에서 ‘강구한다’, ‘하기로 한다’, ‘협력한다’ 등으로 명시할 뿐 구체적인 계획이나 이행 방법이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의 견해 표명 부분도 ‘일본 정부의 우려를 인지하고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만 할 뿐 ‘적절한 해결’의 의미나 방법을 규정하지 않았다고 봤다.

헌재는 논란이 됐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나 ‘국제사회의 비난·비판 자제’라는 표현 역시 양국의 법적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근본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양국 공통의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고, 한일 양국 간 법적 관계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 한일 충돌은 일단 피해, 변수는 남아

이번 헌재 결정으로 한일 간 충돌은 일단 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안부 피해자 대리인단은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합의 및 발표가 결국은 공식적인 협상이나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합의의 성격, 효력 등을 감안해서 과감하게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단초를 마련한 게 아닌가 한다”고 했다. 선고 직후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은 “잘못된 합의인데 기가 막히고 서운하다. 다시 협상해야 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들은 헌재 판결 직후 속보를 내보내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NHK방송은 “판결에 대해 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예상돼 문재인 정권의 대응이 주목된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헌재는 일한(한일) 합의의 법적 구속력도 부정하고 있어 (한일 간) 새로운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한일 위안부합의#헌법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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