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 靑방문 결과’ 송병기가 메모… ‘임동호 자리 요구’ 기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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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하명수사 의혹 뇌관 ‘송병기 수첩’… 송철호 靑방문 다음날 메모에
“VIP 대신 비서실장이 출마 권유… 산재모 추진보류→공공병원 검토”
‘VIP 면담자료’, 공약 논의 가능성… 다른 경쟁자 이름 옆엔 공기업 써놔

“출마-공약-공천 모두 ‘송병기 수첩’ 내용처럼 됐다.”

지난해 6·13지방선거 당시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전략 참모였던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업무수첩이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 의혹’ 사건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송 시장의 선거캠프 전신인 ‘공업탑 기획위원회’가 가동됐던 2017년 가을부터 청와대와 송 시장 사이의 교류 과정을 복원 중인 검찰은 선거 투표일로부터 정확히 8개월 전인 2017년 10월 13일자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 메모에 주목하고 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비리 의혹을 청와대에 처음 제보한 송 부시장이 김 전 시장 외에도 송 시장의 당내 경쟁자들과 지지 여부가 불투명한 지역 유력 정치인에 대한 대응 전략을 논의한 내용까지 상세히 적혀있기 때문이다.

○ 송철호 청와대 방문 다음 날 ‘BH 방문 결과’ 메모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7년 10월 12일 송 시장은 청와대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다음 날인 10월 13일자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에는 ‘송 장관 BH 방문결과’라는 제목 아래 메모가 적혀 있다. 여기엔 송 시장에 대한 청와대의 출마 요청과 당내 경쟁자들 및 지역 국회의원에 대한 거취 등을 종합해 정리했다. 송 장관은 송 시장이 그의 선거캠프에서 불리던 호칭이다.

10월 13일자 송 부시장의 수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와대(BH)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을 뜻하는 ‘VIP’ 표현이 여러 번 거론된다는 점이다. 먼저 ‘VIP가 (송 시장에게) 직접 후보 출마 요청하는 것을 면목 없어 해 비서실장이 요청한다’는 취지의 메모가 적혀 있다. 송 부시장이 당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에게서 어떤 경위로 이 요청을 전달받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VIP 면담자료―원전해체센터, 국립대, 외곽순환도로’라는 메모도 있다. 울산의 숙원사업이었던 외곽순환도로 건설은 예비타당성조사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올 1월 나란히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됐다. 문 대통령 공약과 겹치는 원전해체센터 건립은 현재 추진 중이다.

검찰은 특히 10월 10일, 12일, 13일 등 세 차례 기재된 ‘산재 모(母)병원’ 관련 언급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좌초되면 좋음’(10일) ‘BH 방문’(12일) ‘추진 보류’(13일)로 이어지는 메모 흐름만 보면 경쟁자인 김 전 시장 공약이었던 산재모병원 건립을 훼방 놓으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7개월 뒤인 2018년 5월 28일 산재모병원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관장했던 기획재정부는 불합격 결정과 함께 사업 백지화를 발표했다. 김 전 시장은 선거 투표일을 불과 16일 앞두고 공약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송 부시장 기록대로 송 시장의 BH 방문과 VIP 면담이 사실이라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017년 10월 당시 송 시장은 청와대와 공식적인 연결고리가 없는 민간인 신분이었다. 송 시장이 대통령직속 지역균형발전위 고문에 위촉된 건 40여 일 뒤인 11월 27일이었다.

○ 임동호 “임종석 김경수 등과 술자리서 총영사 자리 얘기”

메모에는 정치적 경쟁자 정리와 우군 확보에 공들인 정황도 나온다.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송 시장과 경쟁했던 임동호 전 최고위원 이름 옆에는 ‘(자리요구)’라고 쓰여 있다. 함께 경합했던 또 다른 당직자 이름 옆에는 공기업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중 임 전 최고위원은 최근 본보 등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7∼2018년 자신이 “청와대 측에 수차례 일본 오사카 총영사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2월 한병도 당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임 전 최고위원을 만나 당시 민주당에 불리한 울산 선거 판세를 거론하며 고베 총영사 자리를 역제안했다고 공개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당시 상황을 재확인하기 위해 19일 울산지검에서 임 전 최고위원을 2차 조사했다. 임 전 최고위원은 조사실로 들어가기 전 기자들에게 “임종석 전 실장과 우리 김경수 경남지사, 국회의원들도 있는 술자리에서 한 수석이 ‘꼭 오사카를 가야겠나, 다른 데는 어떻나’라고 말한 적은 있으나 친구로서 오간 대화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현역 국회의원으로 지난해 5월 30일 송 시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던 강길부 무소속 의원에 대한 언급도 있다. 2017년 10월 13일자 메모에서 ‘거취 관련 정무적 접근 요청’이라고 기재된 강 의원은 약 한 달 뒤인 11월 9일자에 ‘올해 6월 초 먼저 전화’ ‘배신자, 허탈감’ 등의 표현과 함께 거론됐다. 당시 강 의원이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 복당을 결정했던 상황과 들어맞는다. 검찰은 김 전 시장에 대한 참고인 조사에서 강 의원이 선거 2주 전 송 시장 지지로 돌아선 배경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 “공직 후보자 사퇴 목적으로 자리 제안하면 선거법 위반”

검찰은 송 부시장 수첩과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청와대와 공무원들의 불법 선거 개입 행위가 없었는지를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특히 당내 경선 과정에서 특정인을 사퇴시킬 목적으로 ‘다른 자리’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선거법 57조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검찰 수사 초점이 김 전 시장에 대한 경찰의 하명 수사를 넘어 송 시장 당선을 위한 청와대의 전방위적인 선거 개입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신동진 shine@donga.com·황성호 / 울산=정재락 기자
#송철호 현 울산시장#청와대#하명 수사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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