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 화성사건 범인으로 검거된 윤모 씨, 경찰에 “내가 한 게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4일 21시 21분


코멘트
동아일보DB
동아일보DB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가 경찰이 화성 사건의 모방 범죄로 결론 내린 8차 사건을 본인이 저질렀다고 자백한 사실이 드러났다.

4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춘재는 수감 중인 부산교도소에서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 1988년 9월 16일 발생한 8차 사건이 본인 소행이라고 자백했다. 당시 이춘재는 다른 화성 사건을 자백할 때와 마찬가지로 종이에 약도를 그리며 8차 사건 범행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차는 피해자 박모 양(13)이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진안동) 자신의 집에서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박 양의 어머니는 아침에 딸이 일어나지 않자 방문을 열었는데 박 양은 이불 속에서 숨져 있었다. 당시 경찰은 다른 화성 사건과 달리 피해자의 손발이 묶여 있지 않았고, 야외가 아닌 유일하게 피해자의 집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모방 범죄로 결론 내렸다.

사건 발생 다음해인 1989년 7월 경찰은 윤모 씨(당시 22세)를 범인으로 검거했다. 경찰은 “윤 씨가 박 양을 성폭행 한 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불구적인 신체적 특징’ 때문에 범행이 특정될 것을 우려해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윤 씨를 검거한 공로로 수사팀 4명이 1계급 특진했다.

당시 경찰이 윤 씨를 진범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박 양의 방에서 발견된 범인의 음모였다. 경찰은 음모에 카드뮴이 다량 함유돼있다는 점에 착안해 중금속에 노출된 공장 직원이 범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당시 농기계 수리공이었던 윤 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윤 씨의 음모와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를 비교한 결과 방사성 동위원소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경찰에 보냈다. 당시에는 이춘재를 화성 연쇄사건의 진범으로 지목한 유전자(DNA) 분석기법이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다.

8차 사건의 진범이 본인이라는 이춘재의 자백이 맞다면 부실한 경찰 수사로 윤 씨가 19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시킨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2002년 윤 씨의 여죄를 조사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그를 만난 경찰은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윤 씨가 ‘나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관련해 아무 것도 모른다. 내가 저지른 게 아니다. 형들이, 형사님들이 나를 여기다 잡아넣었잖아’라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윤 씨는 만기 출소일인 2010년 5월을 8개월 앞둔 2009년 8월 가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는 최근 이춘재의 진술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찾은 경찰관이 “왜 그때 범행을 인정했느냐”고 묻자 “내가 언제 범행을 인정했냐. 당신들이 인정했지”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춘재의 자백 신빙성 여부를 계속 조사한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기록과 피해자 조서, 이춘재 진술과 당시 현장 묘사가 부합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충격적인 자백인 만큼 자백의 신빙성과 객관성을 수사기록과 비교해 사실 여부를 면밀히 확인해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한성희 기자 chef@donga.com
이경진 기자 lk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