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학생 두려워 학교 못 가던 아이가 활짝 웃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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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피해학생 치유 위한 기숙형 교육기관 ‘해맑음센터’

학교 폭력 피해를 치유하기 위해 해맑음센터를 찾은 아이들이 함께 운동을 즐기고 있다. 해맑음센터는 예술과 창작, 여행 등을 활용한 교육을 중심으로 학교 폭력 피해를 상담하고 치유한다. 해맑음센터 제공
학교 폭력 피해를 치유하기 위해 해맑음센터를 찾은 아이들이 함께 운동을 즐기고 있다. 해맑음센터는 예술과 창작, 여행 등을 활용한 교육을 중심으로 학교 폭력 피해를 상담하고 치유한다. 해맑음센터 제공
대전역에서 농촌 풍경을 따라 차로 30여 분을 달리면 대전 유성구 대동에 자리한 작은 학교 건물이 나온다. 옛날 스타일의 단층 건물, 화단에 세워진 책 읽는 어린이 동상, 축구 골대가 세워진 넓은 운동장은 여느 시골 학교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학교는 ‘특별한 학생들’만 올 수 있는 특별한 학교다. 전국 유일의 학교 폭력 피해 학생 전용 기숙형 교육기관인 ‘해맑음센터’다. 2013년 폐교를 활용해 세운 해맑음센터는 사단법인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중심이 돼 운영하고 교육부가 지원하는 기관이다.

학폭 피해를 겪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지원해 무료로 머물 수 있다. 서류상 학적은 원래 학교에 두되 실제 교육은 해맑음센터에서 위탁하는 형태다. 피해 학생은 2주간 기본 교육을 받는다. 길게는 1년간 장기 위탁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충분히 회복된 후에 원래 학교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 학폭 충격 헤어나지 못했는데… 갈 곳 없는 아이들

이달 12일. 이곳에서 학부모들과 교육부가 ‘학폭 피해 학생 지원’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 20여 명은 대부분 해맑음센터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학폭 피해 자녀의 ‘살길’을 모색한 이들이었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해맑음센터.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해맑음센터.
이들은 “해맑음센터 같은 곳이 없으면 우리 아이들은 죽는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7400개에 달하는 가해 학생 특별교육기관이 있지만 피해 학생만을 위한 기관은 41곳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가해·피해 복합형이 아닌 피해 학생만을 위한 기관을 마련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가 학폭 피해를 당하고 무서워서 학교를 못 갔어요.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생 상담 시설 ‘위(Wee)센터’에 가면 가해 학생도 같이 교육받아요. 그 친구를 마주칠까 더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대안학교를 가보려 했지만 거기도 가해 학생 회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어디에도 우리 애가 마음 편히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강원 춘천에서 해맑음센터를 찾아왔다는 학부모 A 씨의 말이다. 각각 영남, 인천, 충청, 대구, 광주에서 왔다는 학부모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영남에서 온 학부모는 “학폭 피해를 입은 우리 아이는 오도 가도 못하고 학교에서 계속 고통을 당했다”며 “자식을 살리기 위해 전국에 안 다녀본 기관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학교가 겁나서 못 가겠다는 아이를 위해 전국의 대안학교를 다 뒤졌지만 (곧 졸업하는) 중3은 아예 안 받는다는 학교가 많았다”며 “모든 대안학교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통합형이라 갈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 피할 수 없는 고통에 신음, 극단적 선택도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자식이 겪은 고통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루는 아이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 자전거 타고 학교 가는데 골목에서 차가 나와서 날 쳐서 죽였으면 좋겠어. 너무 힘들어’라고요. 3년간 잠도 못 자고 소리 지르며 악몽에 시달리는 아이를 보고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대구 학부모 B 씨)

“아이가 7층에서 유서 써놓고 투신하려는 걸 가까스로 잡았어요. 학폭 때문에 학교에 상담을 요청했는데 갈 곳이 ‘위클래스’밖에 없었대요. 내 아이가 죽어 가는데 어디 도움 요청할 곳이 없었어요.”(학부모 C 씨)

학부모 D 씨는 “아이가 ‘엄마,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걸어. 4층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란 말을 한다”며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 더 절망적”이라고 하소연했다.

고통 받는 자녀를 도울 수 없다는 좌절감에 피해 학생의 부모가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장은 “피해 학생만을 위한 통학·기숙형 기관 설립은 물론이고 피해 학생 부모의 심리적 지원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나만의 고통 아닌 모두의 문제’로 알면서 힘 얻어

그럼에도 해맑음센터에서는 희망이 꿈틀거렸다. 학부모 C 씨는 “이곳을 통해 아이도 살고 나도 살았다”고 했다. 그는 “해맑음센터 교사들은 다년간의 학폭 피해 학생 심리상담, 교육 경험을 가지고 있고 아이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준다”며 “피해 학생 부모들의 자조모임을 하면서 서로의 고통 공감을 통해 치유가 됐다. 죽으려 했던 아이도 센터를 수료한 후 밝게 잘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C 씨는 ‘회복’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아이가 그래요. ‘엄마, 난 해맑음센터 안 갔으면 지금 이 세상에 없을 거야’라고요. 여기 있는 6개월 동안 웃음을 찾고 자신감을 찾았대요.”

교육부는 해맑음센터와 유사한 기숙형 학폭 피해 학생 전담 학교를 전국에 1, 2곳 더 만들 계획이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지역별 통학형 센터도 더 확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피해 학생 전담 기관이 수십 곳이라지만 대부분 전용 시설이 아니라 기존 복합시설에 이름만 피해 시설로 걸어놓은 곳”이라며 “숫자 늘리기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을 온전히 치유할 교사와 프로그램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해맑음센터#학교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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