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의 고문 등 위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권 기산점을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때로 삼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정모씨 등 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당한 사람이 공판절차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사관들을 직권남용·감금 등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에서 ‘혐의없음’ 결정까지 받았다가 나중에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은 경우, 이 판결이 확정될 때까진 국가상대 손배청구를 기대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유죄판결이 확정된 상황에선 정씨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에 따른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았다거나, 그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돼 통보를 받은 사정은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 주장을 받아들인 원심에 법리오해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버스안내양 등을 상대로 ‘이북은 빵 걱정은 없다’ 등 발언을 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981년 9월15일 영장없이 연행돼 구속영장이 발부된 같은달 21일까지 불법구금됐고, 수사관들로부터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이로 인해 오른쪽 눈은 거의 실명되고 난청이 생겼으며 후유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1심은 이듬해 2월 정씨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고, 2심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으로 감형했다. 대법원이 1984년 10월 상고를 기각하며 그대로 확정됐다.
정씨는 당시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1983년 5월 이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정씨는 2014년 2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재심 재판을 거쳐 같은해 8월 무죄를 확정했다. 이후 정씨와 그의 가족은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2015년 3월 소송을 냈다.
1심은 “손배채권이 인정돼도 불법행위일인 1981년 9월부터 5년 동안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또 정씨가 1982년 2월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수사관들을 형사고소하자 “국가상대 손배청구에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아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판시했다.
2심은 검찰이 당시 수사관들에 대해 모두 ‘혐의없음’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위법수사 직후 상당기간 손배청구를 할 수 없는 장애가 있었다”면서도 “정씨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된 2006년 2월께엔 장애사유가 해소됐다고 볼 여지가 많은데, 이 사건 소송은 그때부터 9년이 지난 뒤 제기됐다”고 마찬가지로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진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경우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해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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