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아빠같은 놈에게 당해봐야” 비뚤어진 분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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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 가족에 도넘은 공격

“○○○, 강간마의 ○○아, 너도 고개 숙이고 모자 쓰고 다녀라.”

10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배우 조민기 씨(53)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 씨의 딸을 향해 한 누리꾼이 올린 협박성 글이다. 조 씨의 딸은 2015년 지상파 방송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조 씨와 함께 출연해 인기를 얻었다. 다른 누리꾼은 “○○○도 미국 교수에게 똑같이 당할 것이다”는 글을 남겼다. 조 씨의 딸이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인 사실을 알고 이런 글을 남긴 것이다.

○ 가해자 가족들에게 쏟아지는 공격들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가해자 가족을 향한 일부 누리꾼의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특히 비난의 대상이 되는 가해자 가족 중 딸이나 부인 등 여성이 주로 표적이 된다. 현재 인터넷상에는 가해자와 관련된 기사에 가해자 가족을 향한 수십 개의 공격성 댓글이 올라오거나 가해자 가족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남기는 방식으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조재현 씨(53)와 함께 지상파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조 씨 딸의 인스타그램에는 “○○○랑 자는 사이?”, “다른 배우한테 한 것처럼 예뻐해 주나요? 뒤에서 손 쓱 넣고 만지고?” 같은 글이 올라왔다. 조 씨의 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댓글 작성을 중단한 상태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와 관련된 기사에는 “네 가족들도 똑같이 당하리라”와 같이 저주하는 댓글이 달렸다.

가해자 가족을 향한 공격 때문에 엉뚱하게 제3자가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6) 딸의 실명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배우 이모 씨의 SNS를 찾아가 험담을 퍼부었다. 하지만 동명이인이었다. 배우 이 씨는 지난달 20일 “그의 딸은 연출가이고 저는 배우입니다”라고 글을 올려 해프닝이 일단락됐다.

가해자 가족에 대해 노골적으로 성희롱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 누리꾼은 “○○○ 딸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보니 ○○이 장난 아니게 커서 놀랐다”는 댓글을 남겼다.

○ “부인·딸 공격…또 다른 피해자 양산”

미투 확산 과정에서 가해자 가족에게 공격이 쏟아지는 배경에는 ‘가해자의 딸과 부인을 공격하면 가해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피해자들이 여성인 만큼 가해자의 부인이나 딸도 똑같이 피해를 입어야 한다는 반대급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과 비슷한 연령대의 가해자 딸에게 공격이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미투 사례는 아니지만 지난해 1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누드 합성 그림 ‘더러운 잠’을 국회에서 전시한 것을 빗대 누리꾼들이 표 의원의 부인과 딸의 누드 합성 사진을 유포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해자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선을 넘는 행동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가해자 가족들을 향한 공격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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