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간부에 성추행 당할라… 여직원들 ‘회식포비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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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會食)은 여러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며 친목을 다지는 자리다. 하지만 숱한 사건과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한샘과 현대카드의 사내 성폭력 논란도 회식이 발단이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9일 회식에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직장 여성 10명의 사연을 들어봤다. 회식 코스의 전형이라 할 ‘술자리→노래방→귀갓길’이 모두 성폭력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회식 자리가 직장의 상하관계를 악용한 성폭력 무대로 전락했다며 ‘회식포비아(회식에 대한 공포)’를 호소했다.

건설업체에 갓 입사한 A 씨(26·여)는 4월 사내 체육대회를 앞두고 열린 회식 자리만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 남성 상사가 “A 씨가 팬티만 입고 춤추면 응원상이 확실한데 생각 없어?”라고 말했고 남성 동료들은 낄낄대며 웃었다. A 씨는 수치심에 혼자 밖으로 나가 눈물만 쏟았다. 지속적인 성희롱에 A 씨는 9월 퇴사했다.


한 대기업 계열사의 비정규직 B 씨(24·여)는 3월 인사팀장이 부른 회식 자리에 갔다가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 20대 여성 C 씨는 회식 자리마다 아내와의 잠자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원형탈모증에 걸렸고 최근 퇴사했다. 이 상사는 거래처 사람을 만나면 C 씨의 몸매 이야기를 하며 성희롱을 일삼았다. 항의를 하면 “여자에겐 칭찬”이라는 말만 돌아왔다.

회식 2차 장소로 자주 가는 노래방에서는 친목을 빙자한 성추행이 공공연히 벌어진다. 여직원에게 술을 따르라거나 춤을 춰보라고 하고, ‘디스코 타임’을 빙자해 허리를 감싸는 일은 예사다. 노래방 도우미나 접객여성 취급을 한다. 20대 여성 D 씨는 “상사가 노래를 마칠 때마다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면 분위기를 맞추느라 어쩔 수 없이 안기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회식 후 귀갓길엔 성폭행 불안에 시달린다. 남성 상사가 “밤길이 위험하니까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택시에 강제로 함께 탄다. “사실 예전부터 좋아하고 있었다”며 몸을 더듬는다.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은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직원이 5명인 작은 회사에 입사한 여성 E 씨는 귀갓길에 택시 안에서 성추행을 하려는 회사 대표를 제지했다. 이후 15분만 지각을 해도 급여가 깎이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

최근에는 직장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애매한 말로 성희롱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내가 성희롱 발언을 하는 건 아니고”라면서 “△△ 씨는 옆에서 보면 몸매가 좋다”는 식이다. “듣는 사람이 수치심을 느끼면 성희롱”이라고 반발하면 “사람이 너무 삐뚤어졌다”며 힐난한다. 또 직장에서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 사원’으로 찍혀 2차 피해를 겪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문제를 덮으면서 합의하라고 종용하는 경우도 많다.

경찰청에 따르면 직장 내 성폭행 성추행 사건은 2012년 358건에서 지난해 721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고소를 해도 성희롱은 현행법상 모욕죄에 해당돼 처벌 수위가 수십만 원의 벌금 정도다. 고소를 당한 남성이 피해 여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들어가기도 한다. 취재진이 만난 10명의 여성은 모두 “회식 자리에서 젊은 여직원을 남성 상사 옆에 억지로 앉히는 것부터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구특교·김예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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