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퇴근길에 아이 데려오다 사고 나도 산재 인정

  • 동아일보

평소 출퇴근 경로 벗어났어도 사유 타당하면 업무상 재해

직장인 A 씨는 아내를 대신해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평소와 다른 길로 퇴근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런 경우 지금까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내년 1월부터는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5일 이런 내용을 담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9월 출퇴근길 사고도 산재로 인정하도록 법이 개정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평소 출퇴근 경로를 벗어난 곳에서 사고를 당했더라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였다면 산재로 인정받는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란 △생필품 구입 △직무와 관련한 교육이나 훈련 수강 △선거권 행사 △자녀, 장애인의 등하교 △병원 진료 △가족 간병 등이다.

지금까지는 출퇴근 시 회사에서 제공한 통근버스를 이용하다 사고를 당했을 때만 산재로 인정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교통수단과 무관하게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이었다면 산재로 인정한다. 여기에 덧붙여 통상적인 경로를 벗어났더라도 그 사유가 타당하면 산재로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보상 범위를 크게 넓힌 것이다.

또 내년 7월부터는 상시 근로자가 평균 1명 미만인 영세 사업자나 무면허업자가 시공하는 2000만 원 이하 건설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19만 명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이들은 그간 고용이 불규칙해 행정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다.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자영업자도 늘어난다. 현재 여객운송업, 화물운송업, 건설기계업, 퀵서비스업, 대리운전업, 예술인 등 6개 직종 자영업자만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 자동차정비업을 비롯해 금속가공제조업 등 8개 제조업이 추가된다.

산재 신청 시 사업주 확인 절차는 폐지된다. 그 대신 근로복지공단이 직접 사업주에게 산재 발생 경위 등 사실 확인을 한다.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노동자의 책임 부담이 완화된다. 앞으로는 일정 작업시간, 유해물질 노출량 기준만 충족하면 회사가 이를 반박할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한 업무로 인한 질병으로 인정해준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재해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산재보험이 되기 위해 앞으로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는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경영계에서는 부정수급과 비용 부담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산재보험료는 전액 사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출퇴근 사고에 대한 산재 인정 범위를 확대하면 내년에만 4570억 원의 재원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산재 인정#업무상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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