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허위 필적 감정으로 유죄판결”… 26년만에 정부-국과수 책임 인정
“강압수사 인정되지만 시효 지나”… 강신욱 씨 등 당시 검사들 책임 면해
1991년 공안정국의 시발점이 된 일명 ‘유서 대필 사건’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재심 끝에 2015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강기훈 씨(53·사진)가 정부 등으로부터 6억 원대 배상금을 받게 됐다. 사건이 일어난 지 26년 만이다. 강 씨는 1991년 당시 분신자살한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한 혐의(자살방조)로 기소됐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판사 김춘호)는 6일 강 씨와 강 씨 가족 등 6명이 정부와 당시 수사에 관여한 이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정부와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형영 씨는 강 씨 등에게 6억86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부와 김 씨가 강 씨에게 7억 원, 강 씨의 부인에게 1억 원, 두 동생에게 각각 1000만 원, 강 씨의 두 자녀에게는 각각 2000만 원 등 총 8억6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형사보상법에 따라 이미 지급한 형사보상금만큼의 금액은 빼도록 해 실제 지급액은 6억 원가량이다.
재판부는 “강 씨는 허위 (필적) 감정 결과가 결정적 증거가 돼 유죄 판결을 받았고 석방 후에도 후유증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며 “또 유서를 대신 써서 자살을 강요했다는 오명을 썼고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당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강 씨를 수사했던 강신욱 전 대법관(73) 등 검사들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이 강압 수사를 한 점은 일부 인정되지만 손해배상 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필적을 감정한 김 전 실장에 대해서는 재심 무죄 판결 이후부터 시효가 시작됐다고 본 반면 검찰의 불법 수사는 사건 당시부터 시효를 따져야 한다는 논리다.
강 씨의 법률대리인 송상교 변호사는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가해자이자 몸통인, 유서 대필 사건 조작을 지휘했던 이들에 대해 책임을 부정한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또 “김 씨와 검사들의 위법을 달리 취급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유독 검사들만 다른 판단을 한 것은 면죄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강 씨와 가족은 이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 씨는 2008년 사건의 핵심 증거인 필적 감정서 등이 위조된 사실이 밝혀지자 재심을 청구했고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강 씨는 자신과 가족이 입은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 등 총 3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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