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요양병원 63곳 안전 인증없이 영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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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된 ‘위생-안전 의무인증’ 유명무실

 지난해 말 전북의 한 요양병원. 정부의 안전과 위생 인증 검사를 받던 이 요양병원은 현장 조사 둘째 날 갑자기 “조사를 그만 받겠다”며 평가위원들을 돌려보냈다. 첫날 환자 감염 관리와 의료진 안전 평가에서 연달아 낮은 점수를 받자 병원 측이 ‘합격은 물 건너갔다’고 판단하고 인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 병원에는 아무런 불이익도 없었다.

 고령화 인구 증가로 이용객이 늘고 있는 요양병원 내 화재, 감염병 확산, 노인 학대 등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2013년 도입된 ‘요양병원 안전·위생 의무 인증’ 제도가 허술한 규정 탓에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행 인증제는 ‘신청’까지만 의무이고 인증을 완료하지 않아도 병원에 제재가 가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전국 요양병원 1381곳 중 불합격에 해당하는 불인증 판정을 받았거나 인증을 신청조차 하지 않은 병원은 각각 32곳(2.3%), 31곳(2.2%)이었다. 환자 사이의 감염을 막기 위한 기초 위생수칙을 지키지도, 2014년 22명이 숨진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화재 같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시설을 갖추지도 않은 ‘불량 요양병원’이 전국에 63곳이 있는 셈이다.

 인증을 신청하지 않은 병원은 건강보험에서 지급되는 의료인력 가산금이 끊기지만 일단 신청만 하면 ‘인증 마크’를 얻지 못하는 것 외엔 불이익이 없다. 이 때문에 경북의 한 요양병원은 환자에게 진통제를 제때 투약하지 않고 욕창 예방을 위한 위생 관리도 실시하지 않아 낙제점을 받았지만 현재도 정상 운영 중이다. 불인증 요양병원 32곳 중 29곳에선 평가위원들이 ‘도저히 인증 평가를 진행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곧장 철수했다.

 요양병원 업계는 현행 인증 절차가 ‘꼬투리 잡기’식이라 실제 안전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엔 도움이 안 되고 진료에 들일 시간과 인력만 낭비시킨다고 반박한다. 손을 자주 씻어야 ‘손 위생’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식이어서 “평가위원이 나타나면 곧장 세면대로 달려가라”고 가르쳐주는 ‘족집게 학원’만 성행하는 구조라는 얘기다. 염안섭 경기 용인시 수동연세요양병원장은 “이미 요양병원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의 선택을 받지 못한 질 낮은 병원은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퇴출될 것”이라며 인증을 자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1주기 인증이 지난해 종료됨에 따라 올해부턴 일회용 주사기 관리 지침 등을 강화하고 평가 항목을 현행 205개에서 241개로 늘려 2주기 인증을 실시할 계획이지만 불인증에 따른 불이익이나 인증에 따른 추가 인센티브가 없어 무용지물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영훈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2주기부턴 인증을 받지 못한 병원의 명단을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등 제재 방안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요양병원#인증#주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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