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강서구 까치산시장 내 점포들을 살펴보던 양성훈 소방기술사(40·한빛안전기술단 부장)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2200m² 면적에 늘어선 점포 150여 개의 상황은 큰 차이가 없었다. 콘센트 주변은 습기로 차 있었고 절연 테이프를 감은 낡은 전선들이 간판 밖으로 아무렇게나 삐져나와 있었다. 양 기술사가 다시 전선 위를 가리켰다. 시커먼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양 기술사는 “먼지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며 “스티로폼과 옷 이불 비닐천막 등과 함께 가연성이 높은 물질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불이 났을 때 초기 진압을 위해서는 소방차 진입로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날 찾은 시장의 입구 폭은 소방차 진입을 위한 최소 폭(4m)에 미치지 못했다. 양 기술사는 “소방차를 멀리 세워 두고 호스를 끌고 들어가면 시간이 오래 걸려 초기 진압이 어려워진다”며 “아직 많은 전통시장이 비슷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 경보기 떼고 전선은 주렁주렁
지난해 11월 말 대구 서문시장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1000억 원 이상(추산)의 피해가 났다. 그로부터 두 달도 되지 않아 15일 전남 여수수산시장에서 큰불이 나 50억 원의 피해가 났다. 전통시장 대형 화재는 겨울에 눈 내리듯 계절마다 반복되는 재난이다. 상인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6일 동아일보 취재진은 소방방재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11개 점검항목(체크리스트)을 마련했다. 그리고 서울 각 지역의 전통시장 8곳을 살펴봤다. 각 항목을 ‘전반적 양호’ ‘일부 미흡’ ‘전반적 미흡’으로 나눠 평가했다.
취재 결과 상당수 시장이 잠재적인 화재 위험 속에서 불안한 영업을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미흡한 분야는 가연성 물질 관리였다. 조사 대상 8곳 중 제대로 관리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시장마다 비닐과 천으로 만들어진 천막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천막은 작은 불에도 순식간에 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는다. 종로구 광장시장의 식당가 인근 곳곳에는 식자재를 담았던 스티로폼과 종이 박스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여수수산시장 화재의 유력한 원인으로 추정되는 전기시설 관리도 미흡했다. 8곳 중 1곳(송파구 석촌시장)만이 양호한 상태였다. 먼지가 쌓인 전선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피복이 벗겨진 전선을 절연테이프도 아닌 투명테이프로 감싸고 사용하는 점포도 많았다.
마천중앙시장에 있는 한 반찬가게에서는 국이 끓는 커다란 솥 옆의 기둥에 전선들이 덩굴처럼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전선 몇 개는 아예 피복이 벗겨져 있었다. 주인 이모 씨(59·여)는 “10년째 같은 전선을 썼지만 아직 불이 난 적은 없다”면서도 “그래도 다른 시장에 불이 났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겁이 나곤 한다”고 말했다.
화재경보기는 대부분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관리 상태는 불량했다. 8곳 중 4곳이 미흡했다. 일부 시장에서는 ‘오작동’을 이유로 상인들이 아예 제거한 경우도 있었다. 마천중앙시장의 경우 점포 20곳 가운데 17곳이 화재경보기를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놓았다. 상인 이모 씨(51·여)는 “얼마 전 자리를 비웠는데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해 깜짝 놀랐다”며 “겨우 고생해서 건전지를 빼버렸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전통시장 특성 반영한 점검 필요
상인들도 불이 났을 때 피해가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 상인은 “불을 쓸 일이 많고 오래된 가게가 많아 화재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내가 나서서 관심을 갖고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성북구 돈암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유민선 씨(33)는 “얼마 전 점포당 9만 원에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라고 했는데 거의 신청을 안 하더라”며 “경기가 안 좋으니 돈 나가는 일이라면 누구나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화재 예방과 점검이 수박 겉핥기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영등포구 영일시장 상인인 박석규 씨(55)는 “공공기관에서 나와 3개월에 한 번씩 점검을 하는데 가게를 지나다니면서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게 전부”라며 “전선이나 콘센트가 낡았는데도 못 본 척 지나간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윤한홍 의원실에 따르면 2014년 연간 63건이었던 전통시장 화재 건수는 지난해(11월 말 기준) 92건으로 늘었다. 전통시장의 화재 1건당 평균 피해액은 1336만 원(2010∼2014년 기준)으로 전체 평균(779만 원)보다 월등히 높았다. 화재 발생도 늘고 있지만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 탓에 피해액도 크다.
전문가들은 여수수산시장 화재를 계기로 전통시장 특성을 감안한 맞춤형 화재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민간 위탁을 해서라도 연간 2차례 정도 작동 기능 점검과 종합 정밀 점검을 제대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교수는 “전통시장은 비상구나 스프링클러보다는 전기시설이 특히 취약하다.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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