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아빠의 육아휴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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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은 2013년 첫아들 조지 왕자가 태어났을 때 군 복무 중이었으나 당당히 2주간 육아휴가를 썼다.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해 첫딸을 낳고 두 달간 육아휴직을 냈다. 남성 육아휴직이 유명 인사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미국에선 특히 창의성을 중시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남성 육아휴직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최대 1년의 유급휴가를 발표했고, 페이스북은 4개월 유급 육아휴직을 전 세계 직원들에게 확대했다.

 ▷스웨덴에선 아빠 10명 중 9명이 육아휴직을 쓴다. 1974년 세계 최초로 성별에 관계없이 유급 육아휴직 제도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주로 엄마들이 썼다. 2002년부터 엄마와 아빠가 각각 적어도 한 달씩 육아휴직을 쓰면 부부가 쓸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을 한 달 더 늘리는 것으로 제도를 바꿨더니 아빠 휴직이 부쩍 늘었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면 온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주장이다. 아빠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가정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엄마는 육아 부담이 줄어든 직장생활에 더 적극적이 되면서 임금과 행복지수도 높아져서다. 

 ▷세종실록에 여자 종에게 100일의 출산휴가를, 남자 종에게는 30일의 육아휴직을 줬다는 기록이 나온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선 ‘남자가 왜?’라는 사회적 통념, 승진 등에 대한 우려가 남성 육아휴직의 걸림돌이었다.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통계청의 ‘2016 일·가정 양립지표’를 보면 지난해 육아휴직을 쓴 남성은 4874명으로 전년보다 43% 늘었다. 여성의 17분의 1 수준이지만 10년 사이 23배가 늘어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어제 롯데그룹이 대기업 최초로 내년부터 최소 1개월 이상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는 올 9월 기준으로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 공무원 비율이 사상 처음 20%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남성 육아휴직이 문화적 주류로 수용되는 건 반갑지만 기뻐하기엔 이르다. 국가 공무원과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남성에게 육아휴직은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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