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말레이 축구 노장들의 아름다운 재회…45년 만의 대결 결과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일 19시 25분


1971년 9월 25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 열린 독일 뮌헨올림픽 축구 아시아지역 예선 한국 대 말레이시아의 경기. 수중전으로 치러진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일방적인 공격을 펼치고도 말레이시아에 역습을 허용해 0-1로 패했고 말레이시아는 4전 전승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당시 상대 전적 7연승을 달리던 한국으로선 올림픽 티켓이 걸린 중요한 경기에서 패배해 큰 충격에 빠졌다.

45년이 흐른 1일 강원 춘천시 공지천 구장에서 양국의 전 국가대표들로 구성된 OB 팀의 대결이 펼쳐졌다. '제11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한민족축구대회' 개회식에 앞선 이벤트. 한국 OB 팀은 1971년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 뛰었던 김정남과 이세연 등을 포함해 김진국, 이영무, 김재한, 박경훈, 이태호 등 왕년의 스타 20명으로 구성됐다. 말레이시아 OB 팀엔 1971년 경기에서 한국의 파상공세를 막아낸 명수비수 소친온이 포함돼 있었다.

경기 결과는 이상하리만큼 똑같았다. 한국 OB 팀이 훨씬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후반전 역습 한 방에 0-1로 무너졌다. 더욱이 골의 주인공은 45년 전 승리의 주역 소친온이었다.

그러나 양팀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승패를 떠나 한데 어우러졌다. 수십 년 만의 만남이 반가운 듯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특히 선수 시절 같은 수비수로서 자존심 대결을 펼쳤던 김정남(73)과 소친온(67)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고 뜨겁게 포옹했다. 공교롭게 이날 두 선수의 등번호는 같은 3번이어서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들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45년 전 말레이시아에 패하고 2개월 뒤 은퇴했던 김정남은 "통한의 패배였기에 내 축구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며 "하지만 오늘 소친온을 만나니 너무 반갑고 좋았다"고 말했다. 소치온도 "한국 OB 팀과의 경기 제의에 선뜻 응했다"며 "낯익은 얼굴들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고 밝혔다. 양 팀 선수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45년 전의 추억을 되새기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인 이세연(71)은 중국계 말레이시아 골키퍼 조지경과의 남다른 인연을 소개했다. 청소년 대표를 거쳐 국가대표까지 같은 포지션으로 많은 시합을 하면서 친해진 두 사람은 자녀를 낳으면 서로의 이름을 쓰기로 약속했던 것. 결국 조지경의 아들은 조세연이 됐고 이세연의 딸은 이지경이 됐다. 이세연은 "지경이란 이름을 붙였더니 (다소 어감이 이상한) 이지경이 됐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감수했다"며 "이번에 조지경이 올 까 기대를 많이 했는데 사업이 바빠 못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아쉬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추억의 라이벌' 경기 성사에는 말레이시아에 사는 한국동포들의 공이 컸다. 한국 동포들이 평소 말레이시아에서 축구를 즐겨한 덕분에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과도 막역한 사이가 됐고 한국 OB 팀과의 경기를 제의하자 말레이시아 대표 출신 원로들도 흔쾌히 응한 것이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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