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前 한국서 미국으로 입양 됐는데 무국적이라고? 무슨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4일 20시 00분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가정에 1985년 입양돼 평생을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저스틴 기홍 씨(33)는 최근 한국으로 추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법적으로 미국시민이었던 적이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기홍 씨를 입양한 미국 부모가 입양 당시 기홍 씨의 귀화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은 입양과 동시에 관련 기관과 대사관이 입양자 시민권 획득을 위한 추가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만 당시는 부모를 위한 교육이 부족했다. 뒤늦게 ‘어린이 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 of 2000)’이 2001년 2월 발효돼 그 시점을 기준으로 미국시민권이 없는 18세 미만의 입양자 10만 여명이 시민권을 받았지만 기홍 씨는 당시 이미 18세로 혜택을 받지 못했다.

1981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몬테 헤인스 씨(44)의 사연은 더 기구하다. 10살 때 미국으로 입양돼 1990년대에 미군으로 쿠웨이트에서 복무까지 했지만 2001년에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기다리던 중 자신이 법적으로 미국시민이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미국 양부모가 입양과 동시에 미국시민이 된다고 어림짐작했던 게 문제였다. 헤인스 씨는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뒤 한국으로 추방됐다. 지금은 한국의 한 ‘1000원 샵’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으로는 한국 여권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상태다.

워싱턴포스트(WP)는 기홍 씨와 헤인스 씨 같이 입양 당시 귀화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아 ‘정체성 위기’에 빠진 한국 출신 입양자들이 1만8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2일 보도했다. WP는 베네수엘라, 독일,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 입양돼 비슷한 운명에 처한 입양자들도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지만 다수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기홍 씨를 비롯한 이들 무국적 입양아들은 최근 미국시민에 의해 입양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입양자 시민권법(Adoptee Citizenship ACt)’의 제정을 청원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해당 법안을 지원하고 있는 민주당 소속 에이미 클로부차르 상원의원은 “이들은 미국 가정에서 자라나 미국 학교에 다녔고 미국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며 “입양자들이 그들 본연의 정체성인 미국인으로서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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