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살배기 손목잡고 달려온 ‘오디션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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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연예인 만들기’ 도넘은 부모들

올해 초 영·유아 의류 쇼핑몰을 연 이모 씨(29·여)는 아역 모델 공고를 내고 깜짝 놀랐다. 신생 업체인데도 일주일 만에 100장 가까운 지원서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면접장에서도 학부모 간 신경전이 치열했다. 사진 찍기 싫어 우는 유치원생 자녀에게 억지로 표정 연기를 시키는 학부모도 있었다. 이 씨는 “원치 않는데 학부모 때문에 억지로 사진을 찍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아역 배우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자녀를 연예인으로 키우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부모들은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 ‘아역 모델 선발대회’ 등을 통해 일찌감치 자녀의 연예계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내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올해 처음으로 ‘키즈 모델 선발대회’를 열었고 YG엔터테인먼트에서 아역 배우를 발탁하면서 이런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대형 기획사보다 상대적으로 선발 기회가 많은 인터넷 쇼핑몰 아역 모델을 노리는 학부모도 많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여러 쇼핑몰 모델 오디션장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문제는 부모의 극성에 아이들이 혹사를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우는 연기를 위해 오디션 현장에서 아이에게 소리치며 울게 하는 엄마를 봤다’ ‘아이는 싫다고 말하는데 엄마는 아랑곳 않고 계속 연기에 집중하라고 시키는 모습을 봤다’는 등의 글이 올라온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과한 화장을 시키는가 하면 격렬한 연기를 하도록 강요해 5∼6세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육아 프로그램에 갓난아기들도 출연하면서 두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오디션장에 오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실제 연기학원을 찾는 어린이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연기학원 측에 따르면 최근 초등학생 수강생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수강생 중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뜻에 따라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올해 2월부터 연기학원에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박모 양(8)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자신이 연기학원에 보내 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다른 꿈이 생겨 연예인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상태다. 더 이상 학원에 가기 싫다는데도 부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양은 “오디션에 갈 때 엄마가 억지로 튀는 옷을 입으라고 하거나 하기 싫은 연기를 시키면 화가 난다”며 “정말 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푸념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이모 양(8)도 “심지어 집에 있을 때도 포즈 연습을 시키는데 차라리 영어학원에 다니는 게 낫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지나친 열정이나 개입이 오히려 자녀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부모 자식 간 관계를 망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열혈 맘’의 유별난 자식 사랑에 교육열이 과도해질 경우 아동 학대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선미 중앙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어떤 것에 대한 주변의 압박이 심해지면 오히려 아이의 성취감이 떨어지는 등 악영향을 미친다”며 “자녀에게 무언가를 주려 하기 전에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이라고 조언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연예인#오디션#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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