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도 영화도 뮤지컬도 “아이돌 모셔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일 03시 00분


대중문화 시스템이 바뀐다

광고모델로 최고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그룹 AOA 멤버 설현. 동아일보DB
광고모델로 최고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그룹 AOA 멤버 설현. 동아일보DB
“이 PD는 FNC 쪽을 확실히 잡은 것 같던데, 김 PD는 어디야. 말해 봐. SM? YG?”

최근 서울의 한 방송사 예능제작국 회의실. 한 CP(책임프로듀서)가 농담처럼 떠본 말에 김 PD가 능청스레 답한다. “에이, 왜 그러세요. 요즘 아이돌 프로 하나 준비 중이긴 한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한 군데’ 얘기 중인 데가 있으니까.”(김 PD)

TV 예능 PD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SM파’ ‘YG파’ 등이 학연, 지연 부럽지 않은 또 하나의 연줄로 부각되고 있다. 대형 아이돌 기획사 중 한 곳과 친분을 유지하며 소속 아이돌을 섭외해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것이다. 한 케이블방송사 관계자는 “일선 PD부터 CP, 국장급까지도 친SM, 친YG 등의 색깔을 잡고 섭외와 기획에 나서고 있다”고 귀띔했다. 가요기획사도 기획 단계부터 편집, 영상 제작까지 전폭적으로 소속 아이돌을 ‘예쁘게’ 밀어줄 PD들과 물밑 제휴를 맺는다. 방송가에서 아이돌의 영향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아이돌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단골이다. 멀게는 ‘god의 육아일기’(MBC·2000∼2001년)부터 ‘리얼다큐 빅뱅’(MTV·2006년) ‘위너TV’(2014년) ‘트와이스의 우아한 사생활’(2016년·이상 엠넷)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개그맨과 배우도 아이돌 기획사로 ‘헤쳐 모여’ 하는 것도 아이돌이 대중문화의 뿌리나 줄기가 됐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YG는 빅뱅뿐만 아니라 김희애 차승원 강동원의 소속사이기도 하다. 유재석 송은이 이국주를 보유한 FNC는 FT아일랜드를, 최민식 설경구 문소리 송일국이 소속된 씨제스는 JYJ의 인기를 기반으로 확장했다. 아이돌이 ‘개국공신’인 셈이다. 대중문화계에서 아이돌을 통해 형성된 자본과 파워가 종합 연예기획사의 든든한 기반이다.

대중문화계에서 유명해지는 가장 빠른 길은 이제 ‘일단 아이돌 되고 보기’다. 수지(미쓰에이)와 설현(AOA)의 경우에서 보듯 소비자를 사로잡아야 하는 CF는 물론이고 영화, 드라마, 뮤지컬 판에서도 아이돌을 향한 구애가 쏟아진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대형기획사들은 아이돌을 기반으로 대중문화 산업의 전방위를 아우르며 상품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며 “불량률 제로의 컨베이어벨트처럼 분화된 이 시스템들로 인해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은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아이돌#방송사#연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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