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데뷔부터 쯔위사태까지… 우리 곁엔 항상 그들이 있었다

임희윤 기자 , 정양환 기자 입력 2016-09-02 03:00수정 2016-09-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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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20년, 일상을 바꾸다]<中> 아이돌史 20대 사건 뻔한 말이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스무 해를 맞은 아이돌 역사에서도 무수히 많은 일이 벌어졌다. 동아일보는 아이돌 전문 비평 웹진 ‘아이돌로지’와 함께 ‘아이돌 20년, 20대 사건’을 뽑았다. 대중문화를 넘어 사회적 파장이 컸던 이슈에 주로 초점을 맞춰 시기순으로 정리했다.

[1]H.O.T. 데뷔(1996년)

한국 아이돌의 시작인 그룹 H.O.T.
한국 아이돌 역사의 시작. 이전에도 ‘만들어진’ 뮤지션이 없진 않았지만 명확한 타깃을 갖고 철저한 기획 아래 체계적으로 양성된 첫 사례였다. 이후 젝스키스와 S.E.S., 핑클, 베이비복스 등이 등장하며 초기 아이돌 시대를 열었다.

[2]SM 코스닥 상장(2000년)


소속 아이돌의 성공에 힘입어 SM엔터테인먼트는 업계 최초로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이후 YG, JYP 등도 상장하며 아이돌 시장은 문화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3]god 아이돌 최초 앨범 100만 장 돌파(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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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최초로 앨범 판매 100만 장을 넘은 god.
10대 취향 중심이던 기존 아이돌과 달리 god는 ‘국민그룹’이라고 불리며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누렸다. 2000년 3집은 184만 장, 2001년 4집은 171만 장 이상 판매됐다.

[4]젝스키스 & H.O.T. 해체(2000, 2001년)


두 그룹의 해체는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을 일으켰다. 반발한 팬들은 시위에 나섰고, 일부 폭력사태도 벌어졌다. 뭣보다 이들의 해체로 불거진 ‘부당계약’ 논란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5]god 박준형 퇴출 번복(2001년)


박준형의 열애를 문제 삼아 소속사가 그의 퇴출을 선언했다. 팬들은 신문에 반대 광고를 싣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고, 10일 만에 퇴출이 번복됐다. 아이돌의 사생활이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고, 소속사를 상대로 팬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킨 최초의 사례.

[6]보아 오리콘 차트 1위(2002년)

현재의 한류를 이끈 선구자. 일본 첫 정규앨범은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1000만 장 이상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당시 일본에선 “보아의 경제적 가치는 2000억 원”이라고 평가했다.

[7]이효리 ‘텐미닛’ 열풍(2003년)


핑클 이후 첫 솔로앨범 타이틀곡 ‘10 minutes’의 성공은 그를 연예계를 넘어 사회적 아이콘으로 등극시켰다. 아이돌 출신으론 처음으로 2009년 TV 연예대상도 받았다. 아이돌 이후의 방향을 성공적으로 제시한 모델이란 평가를 받았다.

[8]비 타임지 100인 선정(2006년)

2006년 미국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된 비.
가수와 배우를 병행하며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2006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돼 한국 아이돌의 위상을 떨쳤다.

[9]빅뱅 ‘거짓말’ 발표(2007년)

2007년 ‘거짓말’을 발표하며 보이그룹의 세대교체를 알린 빅뱅.
데뷔 이듬해 내놓은 ‘거짓말’이 큰 인기를 얻으며 본격적인 보이그룹의 세대교체를 알렸다. 리더 지드래곤은 작사·작곡을 통해 음악적 역량을 선보여 ‘진화한 아이돌’의 모델이 됐다.

[10]원더걸스 ‘Tell Me’ 열풍(2007년)

2007년 ‘Tell Me’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원더걸스.
복고풍 음악과 귀여운 소녀의 결합이란 2세대 걸그룹의 성공 공식을 제시했다. 향후 ‘삼촌팬’으로 불리는 성인 남성 팬의 등장을 이끌었다. 2009년 미국 데뷔 싱글 ‘Nobody’는 한국 최초로 ‘빌보드 핫100’ 76위에 올랐다.

[11]동방신기 전속계약 소송(2009년)

세 멤버가 7월 SM을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소송을 제기했다. ‘노예계약’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했고, 표준계약서 도입의 계기가 됐다.

[12]슈퍼주니어 한경 탈퇴(2009년)

같은 해 12월 슈퍼주니어의 중국인 멤버 한경이 전속계약을 문제 삼고 탈퇴했다. 2014, 2015년엔 EXO의 세 중국인 멤버 역시 계약무효 소송을 벌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13]2PM 재범 탈퇴(2010년)

아이돌 ‘2PM’ 리더 박재범이 데뷔 전 인터넷에 썼던 글이 한국 비하로 받아들여져 공분을 샀다. 자진 탈퇴로 마무리됐지만 당시 ‘제2의 유승준 사태’로 불리며 사회적 논란을 만들었다.

[14]파리 플래시몹(2011년)


2011년 프랑스 파리에 몰려든 유럽 한류 팬들.
SM타운의 프랑스 공연 당시 표를 구하지 못한 팬 수백 명이 루브르박물관 앞에 모여 연장 공연을 요구해 성사시켰다. 이후 유럽과 북·남미로도 플래시몹이 번지며 한류의 세계화를 확인시켜 준 상징적 사건.

[15]동방신기 일본 5대 돔 투어(2012년)


동방신기가 한국 가수 최초로 일본 도쿄, 오사카 등에서 돔 콘서트를 개최했다. 해외 가수로는 본조비와 이글스, 빌리 조엘에 이어 4번째.

[16]티아라 ‘왕따’ 논란(2012년)

당시 최고 인기였던 티아라는 7월 일본 도쿄 부도칸 무대에 섰다. 그러나 현장에서 주고받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이 ‘왕따’ 의혹을 일으키며 인기가 추락했다. 연예계 SNS의 위력을 보여준 사례.

[17]카라 도쿄돔 입성(2013년)

카라가 한국 걸그룹 최초로 일본 도쿄돔 콘서트를 개최했다. 첫 일본 싱글 ‘미스터’는 아시아 여성 그룹 최초로 오리콘 싱글 차트 주간 톱10에 들어갔다.

[18]EXO 앨범판매 100만 장 돌파(2013년)

god 이후 12년 만에 앨범 판매 100만 장을 돌파한 EXO.
첫 정규앨범 ‘XOXO’가 150만 장 이상 팔렸다. 아이돌이 100만 장을 넘긴 건 god 이후 12년 만. 타이틀곡 ‘으르렁’의 인기도 컸지만 370만 명에 이르는 팬클럽의 위력을 보여줬다.

[19]레이디스코드 사고(2014년)


9월 새벽 교통사고로 걸그룹 ‘레이디스코드’ 멤버 은비와 리세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 사건은 지속적으로 지적됐던 아이돌의 과도한 스케줄과 관리 부족 문제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20]트와이스 쯔위 논란(2016년)

정치·외교적 논란에 휩싸였던 트와이스 쯔위.
대만 출신 쯔위가 한 방송에서 대만기를 흔들었다가 중국의 공분을 샀다. 아이돌 산업이 국제 정치이슈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10대 소녀는 고개를 조아렸고, 미성년 연예인에 대한 처우 논란도 이어졌다.
 
정양환 ray@donga.com·임희윤 기자
#아이돌#대중문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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