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5·18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을 왜 보훈처장이 결정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00시 00분


국가보훈처가 어제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기념곡 지정을 불허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참석자들의 ‘자율 의사’를 존중한다는 설명이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의 회동에서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요청했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당장 협치의 정신을 깼다며 박승춘 보훈처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보훈처에 재고를 요청했다. 대체 왜 보훈처장이 이 문제의 결정권을 쥐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작년 3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기념곡 지정을 요구했을 때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반대하는 분도 계시고 찬성하는 분도 계시기 때문에 국가적 행사에서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우려가 있다. 기념곡을 제정한 예도 없다”는 대통령의 설명은 어제 보훈처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올해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며 태도 변화를 보였다. 야당의 기대를 잔뜩 키워놓고 사흘 뒤 보훈처가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제창 불허’한다니 사달이 난 것이다.

보훈처는 반대 이유로 이 노래가 북한이 5·18을 소재로 만든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는 점 등을 들었다. 우파 일각에선 이 노래의 ‘임’이 김일성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국민은 먹고사는 일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노래를 놓고 왜 해마다 5월만 되면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350년 전 효종의 어머니 조대비의 복상(服喪)을 1년으로 할지, 3년으로 할지를 놓고 벌어진 기나긴 당파싸움이 연상될 정도다. 어제 우상호 더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정권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여야 협치를 위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압박까지 했다. 5·18 노래 문제로 모처럼 조성된 협치의 분위기가 깨져선 안 될 일이다.

올 2월 북의 장거리미사일 도발 직후 박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의 해법이 달랐던 개성공단에 대해 폐쇄 결정을 내렸다. 조대비 복상을 놓고 벌어진 1차 예송논쟁도 당시 임금인 현종이 나서 끝장을 냈다.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 책상에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팻말을 올려놓은 바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놓고 갈등을 더 키우지 않으려면 보훈처에 결정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결정하고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5·18민주화운동#임을 위한 행진곡#국가보훈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