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생활비 지원 검토”

  • 동아일보

화학물질 인허가-유해성 심사 부실… 정부 책임론 커지자 뒷북 대응

부실한 화학제품의 인증과 관리, 법령 위반, 늑장 대처와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이런 내용의 정부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수사가 옥시레킷벤키저 등 민간기업에 집중돼 정부는 책임론에서 한발 비켜나 있었지만, 정부의 잘못이 속속 드러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현안보고’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은 “당시 규정과 근거가 미비했다는 말만으로 책임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를 질타했다. “안방의 세월호 참사”, “제품이 버젓이 유통돼온 15년 동안 관리 당국은 무엇을 했느냐”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다”라며 “명백한 직무유기이고 축소 은폐를 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 대해) 검찰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책임론의 핵심은 화학물질의 인허가 및 관리, 유해성 심사 등과 관련한 정부의 부실 처리 문제로 모아진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1997년 제품 원료로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에 대해, 2003년에는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에 대해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관보에 고시했다. 신청서에 에어로졸(대기 중 고체나 액체 상태로 떠 있는 미세 물질)로 쓰일 가능성이 언급됐지만 흡입독성 실험을 하지 않았다. 심사 과정에서 당시의 화학물질 관련 법령들을 위반한 사실도 드러났다.

질병관리본부는 2008년 원인 미상의 어린이 폐렴에 대해 전국 현황조사를 진행해 78명이 발병하고 이 중 36명이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추가 역학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사망자가 급증한 2011년에야 역학조사를 벌여 상관관계를 확인했다. 또 2013년 살균제 사용자의 폐 손상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116배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하고도 올해 3월에야 이를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하기관 기술표준원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자율안전확인 인증을 내줬다. 2011년에는 유관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제품 성분의 유독성을 확인했는데도 옥시 측이 보고서 접수를 거부하자 연구를 중단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관련 법제에 분명히 구멍이 있었다”며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윤 장관은 2차 피해 조사·판정 당시 태아 단계에서 입은 피해를 인정한 사실도 확인했다. 향후 피해 조사·판정 과정에서 생식독성 피해 인정 가능성이 넓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정연만 차관은 기자들과 만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의료비와 장례비 외에 생활비를 추가로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윤 장관은 “(환경부) 소관이 아니었다” “제가 왜 (환자를) 만나야 되느냐”는 등의 발언으로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옥시가 출연한 50억 원의 기금에 대해서는 “한 푼도 못 쓰고 계좌에서 관리 중”이라고 밝혔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임현석 기자
#가습기살균제#옥시#정부책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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