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친환경디자인박람회’ 성공을 기원하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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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 광주호남취재본부장
정승호 광주호남취재본부장
전남 나주시 산포면에 자리한 전남도농업기술원 생명농업관 뒤편에는 2층짜리 창고가 있다. 수년 전부터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가득 쌓였던 이곳은 현재 ‘2016 세계친환경디자인박람회’ 조직위원회가 쓰고 있다. 창문 하나 없는 건물에서 조직위 관계자 30여 명이 5월 5일부터 29일까지 올해 처음 열리는 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다.

전남도(20명)와 나주시(2명)에서 파견한 공무원과 외부 전문가(2명), 감독단(7명)으로 꾸려진 조직위는 열악한 근무 여건보다 더 힘든 게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이다. ‘친환경과 디자인이 과연 어울리나’, ‘콘텐츠를 제대로 채울 수 있을까’, ‘다른 박람회와 뭐가 다르지’….

처음에는 조직위에 파견된 공무원들조차 친환경에 디자인을 어떻게 접목시킬지 걱정이 앞섰다. 전남도가 ‘친환경농업 1번지’라는 명성은 쌓았지만 디자인 분야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이낙연 전남지사가 “친환경디자인을 설명하는 것은 마치 외국인에게 한(恨)을 말하는 것과 같다”고 했을까.

조직위는 ‘농산물에 국한된 디자인 개념을 어떻게 확장할까’라는 화두에 골몰했다. 고민 끝에 전남의 생태문화예술 자산에 디자인이라는 옷을 입히기로 했다. 천연염색, 갯벌, 산림, 고인돌, 정자(亭子), 음식, 소리 등 자원에 디자인을 결합해 전남의 새로운 가치와 산업으로서 비전을 보여주기로 했다. 테마가 정해지자 자신감이 생겼다. 전시관 콘텐츠는 공무원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채워졌다. 수백만 가닥의 실로 숲을 연출하고, 왕골로 터널을 만들기로 했다. 풍요를 상징하는 가마니에 동양화를 걸고, 뽀로로가 사는 집을 친환경 소재로 꾸미기로 했다. 고석만 총감독은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 ‘아 이게 친환경디자인이구나’라고 느끼면 성공”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람회를 알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유명인사를 홍보대사로 내세우는 것이다. 조직위 홍보팀이 이세돌 9단, TV 예능 프로그램인 ‘삼시세끼’ 출연진과 담당 PD를 ‘무보수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과정은 눈물겨울 정도다. 공무원들은 지난해 11월 삼시세끼 제작팀이 신안군 만재도에서 마지막 촬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섬을 찾았다. 바쁜 촬영 스케줄 때문에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제작진이 떠난 다음 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서울로 가 어렵게 나영석 PD를 만났다. 나 PD는 “(촬영하면서) 전남에 신세를 많이 졌다. 취지가 좋으니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 씨와 함께하겠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조직위는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국을 벌이고 있던 이세돌 9단과도 접촉했다. 이 9단의 형을 통해 “바둑도 디자인이다. 고향을 위해 홍보대사를 맡아 달라”고 읍소했다. 이 9단은 조직위에 “영광이다. 일정이 빠듯하지만 시간을 내서 꼭 가겠다”며 오히려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외인부대’나 다름없는 조직위 관계자들의 열정을 보면 ‘박람회가 과연 성공할까’라는 걱정은 기우일 것 같다. 자치단체가 ‘세계’라는 타이틀을 걸고 개최하는 박람회는 대개 150억 원 안팎의 예산이 투입되지만 전남도는 97억 원으로 박람회를 치른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삶의 모색’을 기치로 내건 친환경디자인박람회가 5월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기를 기대한다.

정승호 광주호남취재본부장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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