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학업에 지친 학생들 모두 모여라”

  • 동아일보

대전 호수돈여고 ‘홀스톤 갤러리’… 학생들 모여 수다 떨면서 휴식

호수돈여고 안에 있는 홀스톤 갤러리는 학생들이 거리낌 없이 작품을 감상하고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학생들에겐 일종의 ‘해방구’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호수돈여고 안에 있는 홀스톤 갤러리는 학생들이 거리낌 없이 작품을 감상하고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학생들에겐 일종의 ‘해방구’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대전 호수돈여고 ‘홀스톤 갤러리’에는 쉬는 시간만 되면 여고생들이 찾아온다. 교복 치마를 입었지만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수다를 떤다. 심지어 벌렁 드러누워 상념에 젖기도 한다. 이 학교 김주태 미술교사가 입시에 찌든 학생들의 위해 2010년 7월 기도실을 고쳐 만든 갤러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렇게 거리낌 없는 ‘해방구’다. 김 교사는 “갤러리가 없을 때는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던 학생들이 여기로 모여드니 한편으로 ‘안전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갤러리가 해방구인 또 다른 이유는 규율의 교실과는 달리 파격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꼭 5년 전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제목의 개관 기념전 당시 김 교사는 갤러리를 작품을 전시하지 않고 그저 ‘비물질적 공간’으로 비워 두었다. 김 교사는 “빈 공간이 그 자체로 작품이고, 이를 둘러보는 학생들은 무위(無爲)의 작가였다.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빈 공간을 채워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의 연이은 기획전 ‘사랑하는 딸에게’는 학업에 지친 학생들에게 해방감과 치유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4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열린 전시회 ‘사랑하는 딸에게: 딸을 위한 놀이터’는 아빠 안상진 작가가 딸 성민 양의 수백여 점의 그림들로 갤러리를 채웠다. 그림은 관객들이 마치 놀이에 온 것처럼 깡충깡충 뛰거나, 비틀비틀 걷거나, 엉금엉금 기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이달 11일부터 내달 8일까지 기획된 ‘사랑하는 딸에게: 사랑하는 엄마에게’는 엄마 김미진 작가와 딸 백세라 양(부산예술고 2학년)이 꾸몄다. 엄마는 고가구와 도자기를 보수한 작품을 설치하고, 딸은 분장을 통해 만화 캐릭터를 흉내 낸 작품(코스프레)을 선보였다. 모녀의 끈끈한 예술적 교감을 ‘질투’한 나머지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는 김 작가의 남편 백경동 씨는 전시 도록에 꽤 긴 ‘세라 아빠의 현대미술 여행기’를 실어 아내와 딸의 예술 여행에 동참했다.

학생들은 전시에 대한 섬세한 반응으로 방명록을 빼곡히 채워 나가고 있다. 2학년 오효정 양은 목재 서안(書案)의 부서진 다리를 나무가 아닌 브론즈로 대체한 김 작가의 작품을 보고 “단점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밝혀야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고 적었다. 김 작가가 “어차피 보수한다고 똑같아질 수는 없을 바에야 오히려 보수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려 했다”고 작품 배경을 밝힌 데 대한 반응이다. 역시 2학년인 하수정 양은 “(전시가) 우리의 시각을 한층 새롭게 하고 지친 일상에 원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감사의 마음을 남겼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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