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교과서 가격인하 명령 부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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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8곳 명령불복 소송 승소… 확정땐 인상된 값으로 공급 가능
2014년 검인정 2000만부 이미 판매… 교육부 항소 포기땐 400억 물어야

교과서 출판사들이 교육부의 가격인하 명령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출판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이승한)는 4일 도서출판 길벗 등 출판사 8곳이 “교과서 가격조정 명령이 부당하므로 취소해 달라”고 교육부 장관과 경기도교육감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교육부가 조정가격 산정방법이나 구체적인 산출 명세를 밝히지 않은 채 가격조정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규정만 근거로 처분했다”며 “처분 이유를 제시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교육계에서도 교육부의 가격조정 명령이 무리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2010년 교육부는 교과서 질을 높이라며 검인정 교과서 가격 자율화 정책을 시행했다. 이후 출판사들은 종이 질과 색을 개선하고, 학습자료를 강화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연구개발비를 투입했다. 교과서 가격이 오른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교과서 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책을 바꿔 올해 2월 뒤늦게 관련 규정을 개정해 가격 조정을 시도했다. 출판사가 제시한 올해 고교 교과서 희망가격이 1권당 평균 1만950원에 달해 지난해보다 74%(4630원)가 오르는 등 학부모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유였다. 출판사가 이를 따르지 않자 3월에는 가격조정을 명령했으며, 이에 반발한 출판사들이 교과서 추가 공급을 중단했다가 공급 재개를 결정하는 등 혼란이 벌어졌다.

이번 판결은 27개 출판사가 제기한 소송 5건 가운데 첫 선고로 나머지 소송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판결이 확정되면 출판사들은 인상된 가격으로 교과서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1심 결과에 대해 교육부는 “판결문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소를 포기하기엔 교육부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판매된 검인정 교과서 2000만 부는 교육부가 명령한 가격으로 이미 판매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약 교육부가 항소를 포기하면 출판사가 당초 제시했던 가격과 실제 판매가격의 차액을 보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는 교육부가 보상해야 할 금액을 40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의무교육과정인 초등학교 3, 4학년 검인정 교과서에 대한 차액은 정부 부담이지만 개별 구매나 고교 검인정 교과서에 대한 보상은 검토가 필요해 문제가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는 “교육부의 오락가락 교과서 정책 때문”이라며 “뒤늦게 규정을 개정하고 소급 입법해 이미 만들어놓은 교과서에 개발비도 안 되는 가격을 강제한 게 잘못”이라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신나리 기자
#교과서 가격인하 명령#교육부#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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