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얼음물 샤워 기부’ 포기한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8일 03시 00분


현행법상 공직자 기부금품 모집못해… 일부 법원 “자제해달라” 직원에 메일

“다음은 판사님을 지목해도 될까요?”

A 판사는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아이스버킷챌린지’ 대상으로 지목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ALS(근위축성 측색경화증·루게릭병의 학명) 협회가 시작한 이 캠페인은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10달러(약 1만 원)를 기부하거나 100달러(약 10만 원)를 협회에 기부하도록 유도하고 자신이 동참했다는 사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올린 뒤 타인을 지목하는 식이다.

A 판사가 고민 끝에 관련 부서에 문의한 결과 “공직자 신분으로 기부를 유인하는 행위는 자제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A 판사는 결국 지인에게 “어려울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고 얼음 물동이 샤워는 다른 이에게 돌아갔다.

현행법상 공무원들은 타인에게 기부를 권유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들은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법원에서는 ‘아이스버킷챌린지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e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공익 목적인데 (법령을) 너무 엄격히 적용한 것 아니냐”며 아쉬워하거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도 이 조항의 적용을 받지만, 선출직이어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 연방 공무원들에게 떨어진 아이스버킷챌린지 금지령이 국내에서도 기준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21일 AP통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법무팀, 연방하원 운영위원회 등은 ‘얼음물 샤워 금지’를 알리는 내부 공문을 소속 공무원 및 의원들에게 보냈다. 고위 공직자들이 특정 자선 모금 행사에 동참하는 게 다른 행사나 캠페인에는 부당한 영향을 주는 ‘편애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러 유명인사로부터 ‘다음 동참 대상자’로 지목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얼음물 샤워 대신 ‘조용한 기부’를 선택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아이스버킷챌린지#공무원#금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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