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직간부 줄사퇴에 與측 이사들도 “吉사장으론 안되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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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사회, 길환영 사장 해임안 가결

KBS 노조원들이 이사회를 앞둔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신관 앞에서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KBS 노조원들이 이사회를 앞둔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신관 앞에서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5일 KBS 이사회의 길환영 사장(사진) 해임제청안은 이날 밤늦게 결정될 수 있다는 예측과 달리 2시간 반 만에 통과됐다.

KBS 이사회는 2012년 말 길 사장을 선임했으며 여당 추천 이사 7명, 야당 추천 이사 4명 등 11명으로 구성됐다. 이사회는 무기명으로 진행된 투표에서 찬성 7표, 반대 4표로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야당 측 이사뿐 아니라 여당 측 이사 중 3명이 길 사장의 해임에 동의한 것이다.

KBS 공채 PD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KBS 사장에 올라 주목받은 길 사장은 지난달 9일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보도 개입설 주장 이후 27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길 사장의 임기는 2015년 11월까지로 3년 임기의 절반 정도를 남겨둔 상태다.

○ 길환영 사장, 해임안 통과의 배경


이날 오후 4시에 시작된 이사회는 먼저 이사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때 야당 측 이사들은 수정된 해임제청안을 바탕으로 해임의 불가피성을 주장했고 대다수 이사는 양대 노조가 동시 총파업을 벌이는 등 길 사장의 직무 수행이 사실상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서면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출한 길 사장은 이날 표결을 앞두고 이사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길 사장은 이 자리에서 “보도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을 보장할 확고한 장치를 마련하겠다”면서 “노조의 불법 파업은 엄정 대처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길 사장이 의견 진술을 하는 동안 이사들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것으로 알려졌다. 길 사장이 퇴장한 뒤 이사들은 투표를 실시해 해임제청안을 가결시켰다.

이 과정에서 여당 추천의 양성수 이사는 투표에 참여한 뒤 이사직을 사퇴했다. 양 이사는 “보도통제 여부에 대해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직무 수행 능력을 문제 삼아 해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불법적인 파업에 대한 부담으로 이사회가 사장을 해임하는 것은 KBS 이사회가 법치에서 벗어나 힘에 논리에 휘둘리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해임의결안 통과에는 KBS 양대 노조의 동시 파업 및 보도본부 간부들의 줄 이은 보직 사퇴와 기자들의 제작 거부에 따른 부실한 6·4지방선거 개표 방송, 월드컵의 파행 방송에 대한 부담 등이 여당 측 이사에게도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도 KBS 사장들은 노조의 압박을 받아왔으나 길 사장처럼 ‘고립무원’이 된 사례는 흔치 않다. KBS의 한 간부는 “김인규 사장은 새노조와는 불편한 관계였지만 1노조와는 비교적 소통이 잘되는 편이었다”며 “길 사장과는 여러모로 삐걱거리는 게 많았다. 이번 파업이 확산된 데는 1노조가 등을 돌린 영향도 컸다”고 전했다.

여기에 길 사장이 이명박 정부 말기에 임명된 PD 출신 사장이라는 점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보도본부 간부 출신 한 인사는 “사장이 뉴스 큐시트를 받아보거나 보도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과거 사장 때도 있었다. 그런데 (길 사장은) 아무래도 PD 출신이라 그런지 보도에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위의 눈치를 본다’ ‘무리수를 둔다’는 평이 많았다”고 전했다.

○ KBS 내부 반응과 향후 전망


길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달 29일부터 공동 파업을 벌여온 KBS 양대 노조는 이날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업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길 사장이 사실상 퇴진함에 따라 파업을 멈추고 우리들의 일터인 방송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회는 절차에 따라 수일 내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길 사장에 대한 해임을 제청하게 되며, 대통령이 받아들이면 신임 사장 공모 절차에 들어간다. KBS 이사회는 면접을 거쳐 사장 후보자 최종 1인을 뽑은 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한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KBS 이사회#길환영 사장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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