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꿈을 만나다]‘올림픽 6회 연속’ 출전한 이규혁을 만나다

  • 동아일보

“힘들 땐 그냥 좌절해보는 것도 방법”

경남 창원명곡고 2학년 하예진 양(왼쪽)이 ‘올림픽 6회 출전’ 기록을 세운 이규혁을 최근 만났다.
경남 창원명곡고 2학년 하예진 양(왼쪽)이 ‘올림픽 6회 출전’ 기록을 세운 이규혁을 최근 만났다.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6회 연속 출전이란 대기록을 세운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규혁(36)이 최근 공식 은퇴식을 했다. 그가 20년 넘게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경남 창원명곡고 2학년 하예진 양이 ‘신나는 공부’의 도움으로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이 씨를 만나 그 비결을 들었다.

부모님이 심어준 ‘스스로에 대한 믿음’


이 씨는 초등 1학년 때부터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다. 1996년에 500m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타고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재능만으로는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빙상선수(아버지는 스피드스케이팅, 어머니는 피겨스케이팅) 출신이라 주변에서 “천부적 재능이 있어 운동을 잘할 것”이란 말을 많이 했어요. 한때 ‘올림픽 메달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따겠지’라고 착각한 적도 있지요.”(이 씨)

이 씨는 노르웨이 릴레함메르부터 러시아 소치까지 올림픽에 6회 연속 출전하는 동안 한 번도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고 세계기록을 수차례 경신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올림픽 무대에만 서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 양이 그 이유를 조심스레 묻자 이 씨는 “올림픽 무대가 주는 긴장감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올림픽 경기를 앞두곤 ‘이걸 먹으면 컨디션 조절에 도움이 될까?’ ‘지금 잠을 자야 하는데 왜 잠이 안 올까?’ 등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컨디션 조절에 방해될까봐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씨는 올림픽 메달 획득에 실패한 뒤에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부모님이 그에게 심어준 ‘스스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잘하는 사람이다. 나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며 자신을 믿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제 경기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 이야기하거나 잔소리를 하신 적이 없어요. 그 대신 끊임없이 ‘잘했어, 넌 원래 잘하는 아이란다’라며 제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응원해주셨어요.”(이 씨)

올림픽 6회 출전… ‘실패’가 ‘찬사’로


끈기와 도전의 상징이 된 ‘올림픽 6회 출전’. 이규혁에겐 어떤 의미일까. 이 씨는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당시 16세)에 출전했을 때만 해도 올림픽에 여섯 번이나 나갈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처음부터 6회나 출전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면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올림픽 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나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다시 도전하다 보니 횟수는 자연스럽게 늘었다는 것.

“여섯 번이라는 숫자는 ‘실패’ 횟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 숫자 때문에 저를 칭찬을 해주는 걸 보면 굉장히 놀라워요. 올림픽 메달을 따야만 사람들이 칭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이 씨)

하 양이 “실패나 좌절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극복하셨나요?”라고 묻자 이 씨는 “극복하려고 애써 노력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힘들 땐 그냥 좌절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전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 좌절감이 너무나도 컸어요. 한 달 동안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방황한 적도 있어요. 그저 좌절하고 방황할 때도 ‘내가 제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잊지 않으면 됩니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도전하는 거죠.”(이 씨)

글·사진 김은정 기자 e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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