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동진]유우성측도 검찰도 경의 표한 ‘판사의 품격’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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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진 기자
신동진 기자
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대법정.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항소심 결심 공판이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흥준)의 심리로 열렸다.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진행된 공판에서 결심(結審)의 주요 순서인 검찰의 구형의견, 변호인의 최후변론, 피고인의 최후진술은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야 이뤄졌다. 그사이 검찰과 변호인은 3명의 추가 증인 신문과 1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고인 유우성(본명 류자강·34) 씨의 일부 혐의(국가보안법 편의제공)를 놓고 이례적으로 10시간 동안 공방을 벌였다. 종종 결심 공판에선 이전에 미처 못 마친 심리를 진행하는 일이 있지만 대부분 짧게 끝내는 편이다.

오후 8시부터는 검찰과 변호인 측이 총 5시간 분량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이어 피고인 유 씨가 30분에 걸쳐 최후진술을 마치자 시계는 다음 날 오전 1시를 가리켰다.

14시간 넘게 걸린 마라톤 공판. 검찰, 변호인 할 것 없이 하품을 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등 제각각 피로한 모습을 보였지만 유독 병풍처럼 꼼짝 않고 있는 사람들이 문득 눈에 띄었다. 3명의 재판부였다. 재판 막바지 무더기 증인 신청, 중언부언하는 변론에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재판장의 목소리는 시종 친절했다.

막바지 항소심 공판 내내 보여준 재판부의 경청과 배려는 검찰과 변호인의 마음을 울렸다. 이현철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은 의례적인 표현을 넘어 재판부에 검사들이 많이 배웠다며 ‘특별한 존경’의 뜻을 표했고 피고인 유 씨도 어떤 결과도 달게 받겠다는 ‘신뢰’를 전했다.

재판부는 2월 13일 중국 측의 회신으로 증거 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 여론의 부담감 속에서도 양측을 배려했다. 추가 기일을 원하는 검찰과 서둘러 결심해줄 것을 보채는 변호인 사이에서 재판부는 소송지휘권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는 대신 양측의 합의를 이끌었다. 지난 공판 때 장경욱 변호사가 검찰을 향해 ‘범죄자’라는 독설을 했을 때도 중재를 자처했다.

법정 밖에서는 기자회견과 브리핑을 자청하며 여론전을 펼쳤던 검찰과 변호인도 법정에서는 정정당당한 논리 대결을 벌였다. 열띤 공방을 이끈 노련한 심판은 되레 선수들의 활약을 치하했다. 김 부장판사는 공판을 마치며 “날 섰지만 치열하고 수준 높은 공방을 접해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 행복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정작 경기의 수준을 높인 것은 심판의 품격이었다. 7개월 동안 이어진 항소심 공판은 이제 25일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이번엔 검찰과 변호인이 경청할 차례다.

신동진·사회부 shine@donga.com
#유우성#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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