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섹스리스, 황혼이혼 사유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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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부, 1심 판결 뒤집어

A 씨(68·여)는 45년 전 친구 소개로 남편 B 씨(81)를 만났다. 공무원으로 일하던 B 씨는 1980년경 퇴직 후 대기업 공장에서 나오는 폐부품을 처리하는 사업을 벌여 수십억 원의 큰돈을 벌었다. A 씨는 육아를 전담하며 삼남매를 낳았다. A 씨가 골프를 취미로 치기 시작하자, B 씨는 골프를 못 치면서도 2001년경 함께 골프 해외여행을 떠나 A 씨가 골프 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앨범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둘의 결혼 생활은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부부는 2004년부터 별거하기 시작했고 A 씨는 결국 2011년 B 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A 씨는 혼인 기간에 B 씨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다 별거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B 씨가 1980년부터 23년 동안 자신과 성관계를 거부하면서 수시로 사창가에 드나들었다는 주장도 펼쳤다. A 씨가 별거한 지 7년 만에 이혼 소송을 낸 이유는 B 씨가 재산을 처분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혼인 파탄의 원인이 B 씨에게 있다고 판단해 이혼과 함께 B 씨가 A 씨에게 재산분할 4억5000여만 원에 위자료 4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비록 23년간 부부 사이에 성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B 씨가 A 씨를 성적으로 방치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B 씨는 예전부터 앓던 성기능 장애를 가져오는 전립샘 비대증이 악화돼 1996년부터 치료를 받았고, 급기야 전립샘암 진단을 받고 2007년 수술까지 받았던 점을 감안했다. 또 폭행 폭언이나 사창가 출입은 진술이 엇갈리고 증거가 부족해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가사3부(부장판사 이승영)는 1심 판결을 깨고 A 씨의 이혼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만한 성관계가 행복한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점이긴 하지만 부부에 따라서는 살아가면서 점점 무덤덤해져 횟수가 줄어들다가 딱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관계가 단절돼 버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며 “B 씨가 정당한 이유 없이 성관계를 거부하지 않았고 전립샘 치료를 꾸준히 받아온 점에 미뤄 이혼 사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남편이 고령으로 여생이 얼마 되지 않은 점, 지금도 둘 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점, 세 자녀가 훌륭히 성장해 독립한 점을 감안하면 혼인생활이 A 씨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A 씨가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남편에 대한 싫증과 미움, 노여움을 참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010년 대법원은 부부가 혼인한 뒤 7년 이상 단 한 차례도 성관계를 갖지 않고 불화를 겪다 별거를 하면 이혼 사유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부부 어느 쪽이든 성기능의 장애가 있는데도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않은 채 내버려둔다면 이혼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A 씨 부부의 경우 B 씨가 지속적인 병원 치료를 받았고, 질병 말고 다른 이유로 성관계를 회피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단순히 23년간 성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이혼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섹스리스#황혼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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