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모래시계’… 스타PD 스러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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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눈동자’ 등 히트작 제조기 김종학 PD 고시텔서 숨진채 발견

빈소 찾은 고현정-박상원씨



23일 숨진 채 발견된 김종학 PD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영정사진 속 김 PD가 환하게 웃고 있다(위). 김 PD의 흥행작인 드라마 ‘모래시계’에 출연했던 배우 고현정 씨(왼쪽)와 박상원 씨가 침통한 표정으로 김 PD의 빈소를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빈소 찾은 고현정-박상원씨 23일 숨진 채 발견된 김종학 PD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영정사진 속 김 PD가 환하게 웃고 있다(위). 김 PD의 흥행작인 드라마 ‘모래시계’에 출연했던 배우 고현정 씨(왼쪽)와 박상원 씨가 침통한 표정으로 김 PD의 빈소를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등을 연출해 ‘히트작 제조기’로 불렸던 김종학 PD(62)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고시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PD는 지난해 SBS 드라마 ‘신의’를 제작했다가 출연료 등 제작비 미지급과 관련해 피소됐으며 최근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상태였다.

23일 오전 10시 18분경 분당구 야탑동 Y빌딩 고시텔 5층 방에서 김 PD가 침대에 누워 숨져 있는 것을 관리인 이모 씨(59)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 씨는 “방을 비울 시간이 돼서 오전 9시 50분경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어 문을 열어 보니 김 PD가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작은 창문과 출입문 틈은 청색 테이프로 봉해져 있었고 욕실에서 타다 남은 번개탄이 발견됐다.

김 PD가 자필로 쓴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에는 “여보 미안하다. (자녀들에게) 엄마를 잘 보살펴 주기 바란다. 사랑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후배 PD들에게 내가 누가 될까 두렵다. 나 때문에 PD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줄까 걱정된다”는 글도 적혀 있었다.

배우 이숙 씨(57)는 “김 PD가 ‘신의’와 관련한 수사에 대해 ‘내가 드라마 PD인데 어쩌다가 드라마 주인공이 됐다. 다들 내가 시켜서 했다고 주장한다. 너무 억울하다’며 착잡한 심경을 주위에 토로했다”고 말했다. 빈소는 당초 분당차병원에 마련됐으나 장소가 협소해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겼다.

김 PD는 한국 드라마 역사를 새로 쓴 거장이었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MBC에 입사한 뒤 1981년 ‘수사반장’ 제작에 합류해 드라마 PD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1년 그의 단짝인 송지나 작가와 함께 작업한 MBC ‘여명의 눈동자’는 최고 시청률 70%를 넘기며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PD는 송 작가와 또 한번 손을 잡고 ‘모래시계’(1995년)를 제작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귀가를 빨리 한다고 해서 ‘귀가시계’로 불릴 정도였다. 최고 시청률이 64.7%에 달했다.

1999년 제작사인 김종학프로덕션을 세우고 드라마 ‘고스트’(1999년) ‘대망’(2002년)을 내놓았지만, 전작의 화려한 성적표에는 미치지 못한 채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다. 김 PD는 2007년 한류스타 배용준을 앞세워 제작비 550억 원을 들인 MBC ‘태왕사신기’로 재기를 시도했다.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31.9%를 기록하는 등 성공을 거뒀지만 너무 많은 제작비를 쏟아붓는 바람에 자금난에 시달렸다.

김 PD는 2010년부터 ‘신의’를 기획하며 일본에서 선(先)투자를 받는 등 다시 한번 재기에 나섰다. 이 역시 150억 원에 육박하는 제작비와 톱스타 김희선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으며 지난해 방영됐으나 시청률이 10% 초반대로 평범한 수준에 그쳤다.

더욱이 제작비와 출연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제작사인 ‘신의문화산업전문회사’와 김 PD를 배임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또 이들은 5월에는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고소인 중에는 김 PD의 조카이자 연예기획사 대표인 김모 씨도 포함돼 있다. 김 PD는 이로 인해 서울 영등포경찰서 등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해 영장실질심사가 23일로 예정돼 있었다. 방송계에선 김 PD가 연출 욕심으로 대작을 고집하다가 과도한 빚을 지게 된 것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의’의 경우 드라마 최초로 3D로 제작하겠다고 나섰다가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포기했다. 하지만 ‘신의’에 들어간 화려한 그래픽과 특수효과 때문에 일반 미니시리즈의 2배가 넘는 제작비가 들었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김 PD가 ‘신의’에서 작품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다가 40억∼50억 원의 적자를 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에는 김 PD에 앞서 연예 제작자들이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1월엔 드라마 ‘아이리스’를 공동 제작한 에이치플러스커뮤니케이션의 조현길 대표, 5월엔 남성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전 소속사 대표 이모 씨, 6월엔 예당엔터테인먼트의 변대윤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성남=남경현 기자·최고야·곽도영 기자 bibulus@donga.com
#여명의 눈동자#모래시계#김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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