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외손자 이모 씨는 2008년 2월 코스닥에 상장돼 있던 A업체 지분 50만 주를 4억9500만 원에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자신의 이름 대신 당시 모친의 운전사였던 유모 씨(60) 명의로 주식을 거래했다.
통상 타인 명의로 주식을 거래하면 무거운 증여세와 가산세를 내야 한다. 거래를 뒤늦게 알게 된 과세당국은 유 씨에게 증여세 8900만 원과 가산세 5300여만 원 등 총 1억4200여만 원의 세금을 물렸다.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유 씨는 “실제로 돈을 낸 사람은 이 씨였고 조세 회피 목적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명의를 빌려줬다”며 서울 동작세무서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부분의 차명 주식거래는 예외 없이 세금이 부과되지만 법원은 유 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문준필)는 세무당국이 유 씨에게 부과한 1억4200여만 원의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8일 판결했다. 이 씨의 차명 주식거래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조세 회피 목적이 없을 경우는 증여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에 속한다는 것.
앞서 이 씨는 주식거래 7개월 전인 2007년 7월 B업체가 유상증자를 할 당시 10억 원을 출자해 보통주 18만여 주를 인수했다. 당시 이 씨가 거액을 들여 B업체 주식을 사들이자 재계에서는 “코오롱그룹이 B업체를 통해 다른 회사를 우회상장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금융감독원이 조사했지만 지인의 권유에 의한 이 씨의 단순 투자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이 씨는 코오롱그룹 비서실로부터 “그룹이 연루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행동해 달라”는 주의를 받고 개명까지 했다.
법원은 주식거래에서 자신의 이름이 노출돼 한 차례 소동을 겪은 이 씨가 A업체 주식을 사들이며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차명 거래한 점을 인정했다. 법원은 “이 씨가 차명으로 사들인 A업체가 3년 연속 적자를 냈고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이 씨는 이익배당을 받지 못했다”며 “거래로 발생한 증권거래세 150여만 원은 모두 납부해 조세 회피 목적으로 차명 거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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