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동양고전에 빠지다

  • 동아일보

연세대 화요시민강좌 8회 강연에 1만4000명 신청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관 강당에서 열린 인문학 강좌 ‘동양고전 2012년을 말하다’에서 청중들이 정재서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산해경’ 강연을 듣고 있다. 플라톤 아카데미 제공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관 강당에서 열린 인문학 강좌 ‘동양고전 2012년을 말하다’에서 청중들이 정재서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산해경’ 강연을 듣고 있다. 플라톤 아카데미 제공
“중국의 대표적 지리서 ‘산해경’ 아시나요? 어이구, 많이들 아시네요. 여기 보면 고조선 시절의 고대 한국문화를 묘사한 부분이 나오는데 ‘군자국(君子國)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며 다투지 않고, 남을 아끼며 사랑한다’고 돼 있어요. 이게 우리 민족 본색일 텐데 현실은 너무 각박하죠?”

10월 30일 오후 7시, 연세대 백양관 강당에서 정재서 이화여대 중어중문과 교수가 강연 중에 한 말이다. 1000여 석 규모의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은 박수로 화답했다. 연세대 학술정보원이 주최하고 인문학 후원재단인 플라톤아카데미가 주관하는 ‘동양고전, 2012년을 말하다’ 강연에는 교복을 입고 온 고교생부터 주부 직장인은 물론이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이 모였다. 원래 1500석 규모의 대강당에서 하던 강연이 백양관 강당으로 옮겨 열리는 통에 청중은 계단과 강당 뒤쪽 바닥에까지 자리 잡았다.

자리는 불편하고 주제도 고루할 것 같았지만 고전에 대한 관심은 뜨겁기만 했다. 수업 방식은 ‘옛 말씀’ 전달에서 끝나지 않고 청중이 강연자에게 직접 자신의 현재 삶에 대해 질문하고 그에 대한 고전의 답을 듣는 ‘실전형’이었다.

9월 4일 첫 강연이 열리기 직전까지 주최 측은 회당 청중이 100∼150명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첫 회를 시작할 때부터 1000명 넘는 시민이 모이면서 급히 강연 장소를 학술정보원 회의실에서 대강당으로 바꿨다. 9월과 10월 화요일마다 총 여덟 번의 강연이 진행됐는데 모두 1만4000여 명이 참석을 예약했다. 9월 8일 폭우가 쏟아졌던 날도, 휴일이었던 10월 1일과 3일 사이 평일인 2일에도 1000명 넘게 강연을 들었다. 일곱 번의 강연을 모두 ‘개근’한 사람만 500명이 넘는다. 2시간 강연 중간 ‘조퇴’하는 청중은 거의 없다. 강연을 기획한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는 “기존에 득세해 온 서양적 가치와 논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를 본 시민들은 그 대안으로 동양의 지혜와 인문학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10월 16일 ‘사마천의 사기’를 주제로 강연한 김영수 영산원불교대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고전을 통해 예리하게 지적해 참석자들에게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는 강연에서 “진나라는 민족 신분을 따지지 않아 재상 25명 중 17명이 다른 나라 출신이었고 7명은 국적이 불명확했으며 단 1명만 진나라 출신이었다”며 “한국은 어떤가. 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곧이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치인을 향한 일침도 이어졌다.

“법지불행자상범지(法之不行自上犯之)라는 말이 있어요. 무슨 뜻인지 아시면 손 드세요. 네, 정확하십니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위에서부터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사마천의 사기’ 강연을 맡았던 김 교수는 “강연에 참석한 분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며 “대답도 적극적이고 내게 묻는 질문 수준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이 고전 강연은 ‘옛날 일’만 읊는 고전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 초점을 맞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플라톤아카데미 김윤정 연구원은 “이번 강연은 ‘현재를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고전 읽기는 진정한 고전 읽기가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매주 강의에 참석한 이유건 씨(74)는 “목민심서 강의 때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각으로 현 정치권을 분석하고 비판하니 쉽게 와 닿았다”며 “이 나이에도 강연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돼 사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동양고전#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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