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자연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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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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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늘어 인문계열보다 명문대 합격 가능성 높아
수리논술 관심 증가… 일부 외고 의대 대비반 운영

《모의고사 성적이 전 영역 평균 3등급 안팎인 고2 최모 군(17·경기 성남시)은 계열선택을 앞둔 지난해 큰 고민에 빠졌다. 뚜렷한 꿈도, 목표 대학이나 학과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문계 혹은 자연계 중 하나를 선택하기란 힘들었기 때문.

학교 진학상담교사는 “현재 성적으로는 자연계열의 경우 서울시내 주요 대학 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지만 인문계열에서는 비인기학과 합격도 어렵다”면서 자연계열을 추천했다. 공대에 진학하면 취업도 수월할 것이라고 판단한 최 군은 결국 자연계열 진학을 결정했다. 모의고사 수리영역 성적도 2, 3등급으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최 군은 자연계열 진학을 후회하고 있다. 수학이 너무 어렵다. 특히 공간도형 등 기하부분은 문제풀이는커녕 개념을 이해하기도 버겁다. 최 군은 “스트레스가 엄청나 수학은 물론이고 다른 과목 성적까지 떨어지고 있다”면서 “고3 첫 모의고사 때까지 수학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인문계열로 바꿀 것을 심각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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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열을 선택하는 고교생이 늘고 있다. 최근 3개년 수능 영역별 응시자 수를 살펴보면 자연계열 학생이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수리 ‘가’에 응시한 수험생 수가 △2010학년도 13만7073명(22.9%) △2011학년도 14만5124명(23.2%) △2012학년도 15만4482명(25.5%)으로 매년 8000명 이상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잖은 고교 교사 및 입시전문가들은 “특히 최상위권 학생 중 대다수가 자연계열을 선택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의대 모집정원이 매년 늘어나면서 자연계열의 경우 이른바 ‘SKY’ 등 명문대의 의대는 물론이고 비인기학과라도 합격할 가능성이 인문계열에 비해 상당히 높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 의대 모집정원 증가… 중학교 때부터 수리논술에 관심

최상위권 학생들이 자연계열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대 진학의 문이 다소 넓어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이 2015년까지 의학전문대학원을 폐지하고 의대 체제로 돌아가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매년 의대 모집정원을 늘리고 있는 것.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올해 의대 모집정원은 지난해에 비해 200명 정도 증가했으며 의학전문대학원이 완전 폐지되는 2015년에는 500명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며 “의학전문대학원이 폐지되면서 의대를 갈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됨에 따라 자연계열을 선택하는 최상위권 고교생들은 앞으로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중3 혹은 고1 때부터 수리논술에 관심을 기울이는 학생과 학부모도 는다. 서울의 한 논술학원 원장은 “아직까지 실제 수업에 등록하는 중3, 고1은 많지 않지만 이들 학생 및 학부모의 문의전화가 예년보다 한 달에 수십 통 증가한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 중3 및 고1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수리논술과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자연계열 상위 4%=인문계열 상위 1%

자연계열이 인문계열보다 명문대 진학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자연계열 학생 수 증가의 이유로 꼽힌다.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정원이 늘어난 의대로 소화될 경우 그만큼 명문대 자연계열 다른 학과에 진학할 가능성은 높아진다는 계산에서다. 그렇다면 실제 자연계열에 진학하면 명문대에 진학할 가능성이 얼마나 높아질까.

지난해 수능 응시자 중 수리 ‘가’형을 선택한 수험생은 15만4482명(25.5%)이며 수리 ‘나’형을 선택한 인문계열 수험생은 45만1485명(74.5%)이었다. 한편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주요 대학의 모집인원은 인문계열 총 7013명(46.0%), 자연계열 총 7053명(46.2%)으로 비슷한 수준. 즉, 자연계열은 수능 성적이 상위 4.5%에 들면 서울시내 주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지만 인문계열은 상위 1.5% 내에 들어야만 합격이 가능한 것이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자연계열 학과를 졸업하면 취업이 잘된다는 인식이 증가한 것도 원인 중 하나”라며 “실제 신설 학과나 특성화 학과 중 대다수가 자연계열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일부 외국어고, 의대 진학 대비반 운영하기도…


자연계열에 대한 최상위권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부 외국어고는 ‘비공식적’으로 자연계열반을 별도로 구성해 운영하기도 한다. 경기지역 외고의 A 교사는 “몇몇 외고는 의대 진학이 목표인 학생을 모아 따로 반을 구성한 뒤 방과후수업 때 수준 높은 수학 과학 수업을 진행한다”고 귀띔하면서 “전국단위 자율형사립고에 비해 매년 인기가 하락하는 추세인 외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고교 교사와 입시전문가는 “자연계열이 대학 합격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턱대고 자연계열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수학 과학 성적, 각종 진로적성검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 특히 자연계열에서 수학은 입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더욱 꼼꼼히 분석해야 한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수학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1학기 때 방정식, 함수 같은 ‘연산 중심의 단원’을 배우고 2학기 때는 이보다 어려운 확률, 기하 등을 다룬다”면서 “만약 유독 수학 내신 2학기 성적이 좋지 않다면 자연계열을 선택했을 때 수학 공부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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