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소년 성민이는 지난달 10일 입국한 이후 서울 서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2층 교육실에서 바이올린 선생님에게서 레슨을 받고 있다. 수업에 필요한 언어 소통은
엄마가 도왔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베트남 소년 뉴옌베트하 군(15)이 ‘성민’이란 이름으로 엄마 품에 안겼다. 엄마와 줄곧 떨어져 살아온 성민이였다. 외할머니와 살며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했을 소년은 이제 바이올린을 배우며 낯설지만 더 넓은 세상과 만나고 있다. 다문화가정과 아동센터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는 ‘행복자람교실’(www.nanumart.com)의 친구이자 맏형으로 말이다.
22일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2동 서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행복자람교실. 한 달 남짓 음악선생님과 일대일로 바이올린을 배운 성민이의 첫 합주 레슨 날이다.
“새로 온 오빠야.” 선생님의 소개에 아이들의 질문이 성민에게 쏟아졌다. “몇 살이에요?” “피프틴(15).” “난 영어 모르는데 헤헤.” 베트남 출신 엄마를 둔 혜영이(10·여)의 익살에 성민이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바이올린을 켜자 성민이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통역을 도운 엄마 뉴옌홍번 씨(40)는 아들이 배우는 데 집중하느라 한눈팔 틈이 없단다. 그러면서 성민이가 바이올린 기초를 익힌 뒤 음악교실에서 처음 본 ‘더블베이스’를 배우길 원한다고 했다.
여느 10대들처럼 케이팝과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은 한국에 오면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다는 엄마의 말에 기대가 컸단다. 하지만 성민이가 한국인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온 ‘중도입국청소년’에 해당돼 입국 절차가 까다로웠다.
올봄에 입국하려는 계획은 복잡한 방문동거비자(F1) 서류 탓에 몇 차례 지연되다 지난달 10일에야 성사됐다. 엄마는 베트남에서 성민이를 낳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홀로 한국에 와 가정을 꾸렸다. 어렵게 입국해 한국 국적 취득을 준비하는 성민이처럼 올 1월 말 현재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귀화를 신청한 만 19세 이하 중도입국청소년은 5828명이나 된다. 이 중 상당수가 10대 중반 전후에 새로운 문화권을 접하게 돼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처지다. 입국한 뒤에도 집안에서 3개월∼1년씩 홀로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성민이란 이름은 생후 20개월 무렵 경상도 한 사찰의 스님에게 받았다고 한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2년마다 아들을 만났지만 모자의 정은 같이 사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만 14년을 엄마와 떨어져 살며 아이가 엇나가지 않도록 한 이는 성민이를 애틋하게 보살핀 외할머니였다.
엄마는 아들에게 다문화센터에서 악기와 한국말을 익히게 한 뒤 부담이 되더라도 인근 대학의 어학당을 거쳐 정규 학교에 입학시킬 작정이다. 엄마에겐 성민이가 다문화자녀라는 이유로 따돌림당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얼마 전 기억을 지울 수 없어서다. 엄마는 외국인 관광객 상대 문화유산해설사로 일할 수 있다는 권유로 한국 역사 배우기 과정을 수강했다. 강의도 어려웠지만 15개월 된 막내아들 키우랴 주말에 일하랴 도저히 과정을 이수할 수 없었다.
“그것 봐, 외국인은 잘해 줘도 소용없어.” 그의 사정은 감안하지 않은 채 강사는 차가운 말을 던졌다.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것이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한국에 온 지 한 달 지나고부터 어디든 혼자 다니게 해요. 집에서 다문화센터까지 자전거로 15분 걸리는데 힘들어도 스스로 헤쳐 나가야죠.”
그런 점에서 행복자람교실은 아들에게 용기를 주고 사회성을 길러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는 성민이는 “세상이 넓어지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바이올린 배우고 베트남 말에다 한국말 그리고 영어까지 익히면 3개 언어를 할 수 있잖아. 열심히 안 하면 베트남으로 보내버릴 거야.” 엄마의 우스개 섞인 한국말 엄포에 아들은 ‘엄마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며 못 알아듣는 표정이다.
그러다 이내 나온 대답. “네, 열심히 할게요.” 소년의 미소가 환하다. 행복자람교실이 성민이의 한국 생활에 디딤돌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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