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 막고 서류 없애” 공권력 무시한 일류기업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9일 03시 00분


■ 삼성전자 ‘공정위 조사 방해’ 과태료 4억… 8년새 3차례

지난해 3월 24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들을 건물 보안을 맡은 에스원 직원들이 출입구에서 막고 있다(). 같은 시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직원들이 관련 자료를 폐기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잡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지난해 3월 24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들을 건물 보안을 맡은 에스원 직원들이 출입구에서 막고 있다(). 같은 시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직원들이 관련 자료를 폐기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잡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전자가 고위 임원까지 직접 나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가 법정 최고금액인 4억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됐다. 2005년 조사 방해로 처음 과태료를 문 이후 벌써 세 번째다. 특히 삼성전자는 과태료를 문 이후에도 ‘시설 내 조사차량 진입 차단’ 등 보안규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국가기관 조사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드러났다.

○ 첩보영화 같은 조사 방해


지난해 3월 24일 오후 2시 20분. 공정위 조사관 5명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예고 없이 찾았다. 삼성전자가 이동통신사와 짜고 휴대전화 가격을 부풀리고 있다는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조사는 보안을 맡은 에스원 직원들의 저지로 건물 입구에서부터 봉쇄됐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에스원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사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지원팀장인 박모 전무의 지시에 따라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자료가 저장돼 있던 PC 3대를 다른 PC로 교체했다. 무선사업부의 부서장 김모 상무는 ‘서울 본사로 출장 중’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피신했고 다른 직원들도 자리를 피했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무선사업부 사무실에 들어선 시간은 도착한 지 50분 뒤인 오후 3시 10분. 하지만 사무실에는 직원 1명만 남아 있었고,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던 공정위 조사관들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철수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런 계획적인 조사 방해는 삼성전자가 미리 짜둔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었다. ‘사전 시나리오대로 김 상무는 서울 출장 중인 것으로 응대하고, 조사관의 의도를 명확히 확인한 뒤 다음 날 조사에 응했다’는 내부 보고서가 사건 이후 이뤄진 공정위 조사에서 발견됐다.

조사 방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정위가 조사 방해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건물 출입기록을 요청하자 삼성전자는 PC를 교체한 직원의 이름을 삭제한 허위 기록을 제출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사건 이후 △정문에서부터 차량 진입 차단 및 바리케이드 설치 △주요 파일 대외비 지정 및 영구 삭제 △관련 자료는 서버로 집중 등 보안규정을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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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 방해 16건 중 삼성 계열사가 7건


공정위가 조사 방해에 과태료를 부과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적발된 조사 방해 사건 16건 중 44%인 7건이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발생했다. 삼성그룹이 상습적으로 조사를 방해한 점을 감안해 이번 사건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최고금액인 4억 원의 과태료를 물렸다. 앞서 공정위는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가격을 부풀린 사건과 관련해 총 142억8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이 중 23억8000만 원은 조사 방해에 따른 벌칙으로 추가된 금액이다.

이전까지 조사 방해 과태료는 CJ제일제당 3억4000만 원, 이베이지마켓 2억5000만 원, 삼성토탈 1억8500만 원, SK커뮤니케이션즈 1억2500만 원, 삼성자동차 1억2000만 원, 현대하이스코 5000만 원 등의 순으로 많았다.

공정위는 대기업 직원들의 조사 방해 행위를 엄벌하기 위해 올 5월부터 조사관의 진입을 방해하거나 폭언으로 조사를 방해하는 직원들에 대해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 원 이하 벌금 등으로 형사처벌할 방침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조사 방해 혐의가 공개된 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감스러운 일로 생각하며 앞으로 공정거래법 등 관련법 준수와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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