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내려놓았다, 이번이 4번째 작별… 빠듯한 살림살이… 아직도 집엔 3남매…지은 죄 너무 커서 이제와 후회한들…
일러스트레이션 최남진 기자namjin@donga.com
《 여름이라 다행이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오전 5시. 헌옷에 감싸진 아기는 엄마 품에서 여름 새벽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들어 있었다. 잠든 가족 몰래 작은방에서 낳은 아기를 안고 집을 나온 김영옥(가명·39) 씨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발길을 떼지 못했다. 품 안의 아기가 배가 고픈 듯 뒤척이자 다시 젖을 물렸다. 그때 집 근처 사찰이 생각났다. ‘절에서는 잘 거둬주겠지….’ 집에서 500여 m 떨어진 절 입구에 잠든 아기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 아기는 자신이 버려지는 줄도 모르고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가야 미안하다.’ 김 씨의 눈물은 볼을 타고 떨어져 아기를 감싼 포대기에 떨어졌다. 2006년 8월 2일. 김 씨가 갓난아기를 버리는 ‘첫 범죄’를 저지른 날이었다.
경남 남해군에 살던 김 씨의 남편(42)은 택배기사였다. 고향 오빠였던 남편의 월급은 150만 원 정도. 8세 아들, 6세 딸, 5세 아들 등 아이가 벌써 셋이나 있어 끼니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살림은 늘 빠듯했다. 방 두 개짜리 단독주택에 다섯 식구가 살았다. 남편은 매일 새벽에 나가 밤늦게 귀가해 육아는 모두 김 씨의 몫이었다. 김 씨는 간혹 할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들 때문에 포기하고 남편 수입에만 의존하는 전업주부로 살았다.
김 씨는 어려운 살림 때문에 아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자위했지만 죄책감 탓인지 아기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김 씨는 며칠 뒤 아기를 버린 절을 찾았다. 아기를 감싼 헌옷 뭉치가 보이지 않았다. ‘절 사람들이 잘 키워주고 있겠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 DNA수사로 불구속 입건
그로부터 1년 뒤. 김 씨는 또다시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설마’ 하며 피임을 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임신중절 수술비는 50만 원 안팎이었지만 생활이 빠듯한 그에겐 감당하기 힘든 큰돈이었다. 2008년 8월 15일 오전 1시 그는 결국 아기를 낳은 뒤 다시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교회로 갔다. 사람들 눈에 잘 띌 수 있는 교회 주차장에 아기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죄책감이 덜했다.
다시 2년 뒤인 2010년 5월 29일. 전날 오후 11시 반경 아기를 낳아 집 근처 어린이집 앞에 헌옷으로 감싼 아기를 내려놓고 발길을 돌렸다. ‘잘사는 사람이 키워주는 게 아기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겠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세 번의 임신 기간에 김 씨는 아이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압박붕대로 배를 힘껏 묶고 다녔다. 뚱뚱한 편이어서 주위 사람들도 임신을 눈치 채지 못했다.
올해 7월 24일, 네 번째 아기를 버릴 때는 경찰에 단서가 잡혔다. 그는 이날 오후 2시 40분경 집 근처 사회복지회관 1층 여자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다. 화장실 옆 칸에서 인기척이 났지만 눈치를 못 챈 듯했다. 미리 준비해간 비닐봉지에 아기를 담아 근처의 가정집 대문 앞에 내려놓고 집으로 왔다.
○ 세 아기는 적법한 절차거쳐 입양돼
마침 지나던 행인이 아기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남 남해경찰서는 주택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서 김 씨의 범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확보했다. 나흘 뒤 경찰은 김 씨의 신원을 확인해 입에서 DNA를 채취했다. 버려진 아기의 DNA와 대조하기 위해서였다. 친모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 씨도 순순히 그동안의 일들을 털어놓았다. 경찰은 미제사건으로 분류해 놓았던 세 건의 ‘영아 유기사건 파일’을 꺼냈다. 버려질 당시 채취해둔 아기들의 DNA와 대조한 결과 친모가 김 씨로 밝혀졌다. 공교롭게도 김 씨가 버린 아기는 모두 남자 아기였다.
김 씨가 버린 세 명의 아기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입양돼 잘 자라고 있다. 네 번째 아기도 정식 절차를 밟아 입양될 수 있다. 하지만 김 씨 부부는 넷째 아기를 집으로 데려왔다.
“이제 와서 후회하고 반성하면 뭐 하겠어요. 지은 죄가 너무 큰데….” 김 씨는 경찰의 신문에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경찰은 김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구속감이었지만 그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아이가 3명인 데다 유기한 아이 모두 다행히 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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