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계高 어깨 펴주자/고졸 취업난 해법찾기]<3·끝>‘대졸 유리천장’ 뚫은 4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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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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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잠 아껴 공부… 연구… 1년 2000개씩 폭풍 제안‘고졸 임원’ 전설이 됐다

《 고졸 학력자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유리 천장’의 존재를 실감한다. 능력을 발휘할 만한 기회조차 얻기 쉽지 않고, 설령 기회를 잡았다고 해도 대졸과 동등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노력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고졸 신화’를 이뤄낸 이들은 “개인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업과 사회가 고졸에 대해 편견 없이 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 말단 사원이 ‘능력자’로 인정받기까지

윤생진 창조경영연구소 사장(60)은 전남 목포시에 있는 목포공고 출신이다. 1978년 금호타이어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20년 만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상무로 승진해 사상 초유의 고졸 출신 임원이 됐다. 비결을 묻자 윤 사장은 “입사 초기부터 ‘현장 전문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끊임없이 공부를 한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공고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했지만 대졸 직원보다 이론 지식은 부족했다. 하지만 생산성, 품질향상, 원가절감처럼 현장을 알아야 해답이 나오는 분야에서는 대졸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밤잠을 아껴가며 하루 5시간씩 공부하면서 ‘같은 기계에서 1년에 타이어를 2만 개 더 생산할 수 있는 방법’ 등 제조공정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1년에 2000개씩 쏟아냈다. 품질경영 등 각종 분야에서 그가 대통령상 5번, 훈장 2번, 사장 표창 52번을 받은 것은 모두 노력의 결실이었다.

윤 사장은 어느새 사내에서 ‘고졸 윤생진’이 아닌 ‘능력 있는 윤생진’으로 통했고, 회사는 그에게 서울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권하고 지원해줬다. 그는 “고졸 학력이 자랑은 아니지만 고졸만의 장점을 살려 독하게 일하다 보면 어느 조직이나 나를 인정하고 키워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경돈 GS리테일 차장(39)도 윤 사장 못지않은 ‘고졸 신화’의 대표주자다. 서울 장충고를 졸업한 그는 서울의 한 사립대에 합격했지만 현장에 뛰어들고 싶어 1996년 LG유통에 입사했다. 작은 점포를 배정받은 김 차장은 주어진 일만 하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어떤 고객이 주로 오는지, 주변 상권은 어떤지 꼼꼼하게 분석했다. 점포를 옮길 때마다 그랬다. 자신만의 마케팅 전략을 세워 고객맞춤형 상품, 주변에 없는 상품을 찾아낸 결과 매년 전국에서 상위 1% 직원에게만 주는 사내 최우수상, 반기별로 주는 우수 사원상을 휩쓸었다.

김 차장은 현재 전국 GS수퍼마켓 가운데 매출 1위인 서울 관악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처음 부임한 2009년 6900만 원 정도였던 하루 매출은 요즘 1억6000만 원 안팎으로 껑충 뛰었다. 조만간 2억 원을 돌파하는 게 목표다. 회사도 ‘리더역량 과정’을 만들어 김 차장의 경영교육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GS리테일이 고졸에게도 1년에 최대 세 번의 승진 기회를 준 덕분에 김 차장은 금방 대졸 직원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는 “고졸 출신들이 무작정 대졸과 똑같은 대접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며 “대졸 직원들이 2급에서 1급으로 승진할 때 4년이 걸렸다면 나는 2년 만에 승진을 했기 때문에 임금과 처우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 “내 꿈은 투자 전문가, 전력 전문가”

극심한 취업난을 뚫고 당당히 사회에 첫발을 딛는 새내기들도 눈에 띈다. 서울 성동글로벌경영고 3학년인 윤빛나 양(18)은 고졸 또는 전문대졸을 뽑는 삼성생명 사무직 공채에 합격해 다음 달 1일부터 일하게 됐다. 고교 재학생의 신분으로 전문대 졸업자와 경쟁해 이긴 것이다. 윤 양은 재무 컨설턴트들이 다루는 고객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업무를 맡을 예정이다.

윤 양은 거저 일자리를 얻은 게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투자’ 분야에서 일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관련 공부에 한 우물을 팠다. 하루 6시간씩 공부해 증권투자상담사 자격증을 땄고, 조만간 펀드투자상담사와 파생상품투자상담사 자격증도 따는 것이 목표다. 그는 “고졸이라는 이유만으로 배려해주길 원치 않는다. 한계를 깨고 능력으로 인정받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올해 서울 수도공고를 졸업하고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에 입사한 김동수 씨(19)는 “인문계고 친구들이 대학입시 공부를 하듯 입사 준비에 매달렸다. 학교에서 기술을 익히는 동시에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다”며 “뚜렷한 목적 없이 대학에 가는 것보다 패기 넘칠 때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고 말했다.

발전소 설비를 점검하고 장비의 온도를 체크하는 업무를 맡게 되는 김 씨는 “한눈팔지 않고 노력해 터빈과 발전설비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고 꿈을 밝혔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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