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불법스포츠토토, 학교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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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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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세뱃돈 모았는데, 게임에…”“수업시간에 몰래 스마트폰으로…”

최근 인터넷 불법 스포츠토토가 사회적 논란이 되는 가운데 고교생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고교생이 교실에서 스마트폰으로 불법 스포츠토토를 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불법 스포츠토토가 사회적 논란이 되는 가운데 고교생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고교생이 교실에서 스마트폰으로 불법 스포츠토토를 하고 있다.
《경기지역 A고에 다니는 고3 B군(18)은 올 1월부터 인터넷 불법 스포츠토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PC방에서 친구가 게임하는 모습이 재밌어 보여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최소 베팅 금액인 5000원으로 한두 번 게임을 했지만 몇 차례 돈을 따자 점점 베팅금액이 커졌다. 설에 받은 세뱃돈 20만원과 통장에 모아놓은 100만원까지 모두 게임에 쏟아 부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게임 비용을 스스로 마련할 수 없게 되자 B군은 안방 서랍장에 있던 돌반지에 손을 댔다. 처음에는 한돈 반짜리 금반지를 인근 귀금속 가게에 30만원에 팔았다. 돈을 다 잃으면 인근 귀금속 가게 5곳을 돌며 친구에게 반지를 팔아달라고 부탁하는 방법으로 현금을 만들었다. 그렇게 자신과 누나의 돌반지 10여 개를 팔아 마련한 게임비용은 300만원.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느껴 게임을 그만뒀지만 이미 4개월 동안 500만원 이상을 날린 뒤였다. B군은 “부모님은 아직 돌반지를 몰래 가져다 판 사실을 모르신다. 대학 가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은 뒤 사실대로 고백할 계획이다. 그전에 발각되면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올 2월부터 불법 스포츠토토에 빠져있는 한 고교생의 전용통장. 거의 매일 돈이 오간 기록이 빼곡히 찍혀있다.
올 2월부터 불법 스포츠토토에 빠져있는 한 고교생의 전용통장. 거의 매일 돈이 오간 기록이 빼곡히 찍혀있다.
불법 스포츠토토가 학교까지 파고들었다. 합법 스포츠토토는 국내외 프로축구와 야구, 농구, 배구 등 스포츠 종목의 경기 결과를 미리 예측해 돈을 걸고, 그 결과에 따라 배당금을 나누는 게임. 하지만 불법 스포츠토토는 1회 최대 베팅금액이 10만원인 합법 스포츠토토와 달리 사실상 베팅금액의 제한이 없어 한 번에 수백만 원까지 돈을 걸 수 있는 사행성 도박이다. 베팅 가능한 종목도 e스포츠부터 이종격투기까지 훨씬 다양하다.

남학생을 중심으로 학교현장에 퍼지고 있는 불법 스포츠토토 때문에 큰 돈을 날리거나 게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학교는 한 반에 20명이 넘는 학생이 게임에 빠져있는 경우도 있다.

불법 스포츠토토는 미성년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회원가입하고 게임을 하는 데 아무런 자격요건이 없기 때문.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한 사이트는 주민등록번호 입력 없이 게임비용 입출금을 위한 통장계좌번호와 단속을 피하기 위한 안전장치인 기존 회원의 추천코드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다.

회원으로 가입한 뒤 특정 계좌번호로 돈을 송금하면 자신의 아이디에 게임머니가 충전되고, 이 돈으로 베팅해 결과에 따라 배당을 받는다. 학생들은 주로 학교 정규수업을 마친 오후 4시 반 이후 현금자동입출금기(ATM)나 인터넷뱅킹으로 게임비용을 송금한다. 낮에는 학교에서 스마트폰으로 베팅을 하고 실시간으로 경기결과를 확인한다. 일부 학생은 수업시간에도 몰래 도박을 한다. 자신이 베팅한 게임결과 생각에 수업에 집중할 수 없게 되기 일쑤.

학교에서 스마트폰으로 불법 스포츠토토를 한다는 C군(18)은 “0교시부터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루종일 학교에 있어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게임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자기 스마트폰이 없어도 친구 휴대전화를 빌리면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큰 돈을 손쉽게 만질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학교마다 학생들 사이에서 ‘토토영웅’으로 불리는 학생이 200만∼300만원 씩 돈을 땄다는 무용담이 나돌면서 너도 나도 게임에 뛰어드는 것이다. 자신은 게임 아이디가 없지만 친구에게 돈을 주고 게임에 참여하는 학생도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학부모는 자녀가 불법 스포츠토토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일부 학생은 부모의 눈을 피해 게임전용 통장을 갖고 있다. 실물통장이 없는 인터넷전용 통장을 만들면 주로 학교와 PC방에서 게임을 즐기기 때문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만에 하나 게임에서 돈을 딸 경우 학생들은 그 돈을 어디에 쓸까? 주로 음식을 사먹거나 청바지, 가방, 운동화를 산다. 펌이나 염색을 해 헤어스타일을 바꾸기도 한다. 2월부터 불법 스포츠토토를 시작한 D고 E군(17)은 게임으로 40만원을 땄다. 하지만 돈은 옷과 음식을 사고 다시 게임을 하는 데 일주일 만에 전부 써버렸다.

한창 게임에 빠졌을 때는 온종일 불법 스포츠토토에 매달렸다. 새벽에는 베팅한 유럽 프로축구 게임을 보고 학교에서는 미국 프로야구와 e스포츠 경기에 돈을 걸었다. 저녁 때는 국내 프로야구에 베팅했다. E군이 게임에 빠져있던 4월, 그의 스포츠토토 전용통장을 보면 3일부터 21일까지 18번의 입출금 내역이 빼곡하게 찍혀있다. 게임사이트에 입금한 자동입출금기 영수증이 최근 아버지에게 발각되면서 그는 게임을 그만뒀다. 하지만 E군은 “친구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볼 때면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스포츠토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늘 픽(당첨 가능성이 높은 게임예상 시나리오) 하나만 소개해주라” “오늘 촉(게임 운) 완전 좋아” “언더(게임 예상 기준점수보다 낮은 점수에 베팅)로 걸면 완전 대박날 거 같아”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불법 스포츠토토에서 돈은 따는 학생은 거의 없다. 간혹 돈을 따더라도 다시 게임을 하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전염성이 커 주위에서 게임을 하는 친구가 있으면 평소 관심 없던 학생도 게임에 손을 댄다.

성적 최상위권 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비평준화 지역 고교에서 반 1등을 하는 F군(18)도 불법 스포츠토토를 한다. F군은 “사이트에서 베팅하면 내가 이길 경우에 받을 수 있는 돈을 자동으로 계산해 보여줘요. 그걸 보는 순간 돈을 딸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혹하죠. 약간의 차이로 돈을 잃어도 다음에 꼭 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계속 게임을 하게 돼요”라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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