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한 통산 3번째 국수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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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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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국서 98수 만에 불계승 “2국서 이기고 승리 예감”

최철한 9단(오른쪽)이 국수전 4국에서 승리한 뒤 이창호 9단과 함께 복기하고 있다. 가운데는 이세돌 9단. 사진 제공 한국기원
최철한 9단(오른쪽)이 국수전 4국에서 승리한 뒤 이창호 9단과 함께 복기하고 있다. 가운데는 이세돌 9단. 사진 제공 한국기원
최철한 9단(26)이 세 번째로 국수(國手)에 올랐다.

최 9단은 14일 서울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제54기 국수전 결승 5번기 4국에서 백을 잡고 이창호 9단(36)에게 98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종합전적 3승 1패로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4500만 원.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기아자동차가 후원한다.

단명국으로 끝난 이날 대국은 최 9단의 완승국. 이 9단이 초반 흑 37의 의문수를 두자 최 9단은 백 40, 42로 기분 좋은 흐름을 탔다. 이후 서로 기세의 진행을 보였지만 백 80을 놓게 되면서 때 이르게 백이 우세를 잡았다. 세 불리를 의식한 이 9단은 우하귀 대마 공격에 사활을 걸었지만 백 98로 끊기자 돌을 거두었다.

최 9단은 “국수전 2국에서 어려운 바둑을 이긴 뒤부터 감이 좋았다”면서 “4국에서 급하지 않게 바둑을 두어가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최 9단은 국수전에 특히 강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 9단과 국수전 결정전에서만 4차례 만나 이번을 포함해 세 차례 승리했다. 제47기 국수전 당시 이 9단에게서 타이틀을 뺏고, 48기에서도 이겼으나 49기에서는 졌다. 올해 승리하면서 5년 만에 국수타이틀을 되찾은 셈이다.

국수전 승리로 그는 맥심배 천원전에 이어 국내 타이틀 3개를 차지하게 됐다. 프로기사 랭킹 2위인 그는 또 올 들어 12승 3패로 다승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최 9단은 국후 소감에서 “앞으로도 바둑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 ‘돌부처’도 세월 앞에 무너지나 ▼
22년만에 無冠 이창호 프로랭킹 7위로 떨어져

이창호 시대가 저무는가. 이창호 9단(36)이 마지막 타이틀인 국수전에서 지면서 22년 만에 처음으로 무관(無冠)이 됐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이 9단의 무력한 모습에 바둑 팬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9단은 최근 들어 자주 지면서 프로기사 랭킹도 7위로 떨어졌다. 김승준 9단은 “그의 바둑은 중후반에서 힘을 내는 스타일인데 요즘 젊은 기사들이 연구를 많이 하면서 바둑이 강해진 게 이 9단이 고전하는 이유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기사는 “요즘 이 9단의 바둑에서 치열함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이 9단이 첫 타이틀을 딴 것은 14세 때인 1989년. 당시 KBS 바둑왕전에 승리하면서 세계 최연소로 타이틀을 땄다. 이후 그가 딴 타이틀은 국수전 10회를 비롯해 모두 140개(비공식 2개 포함)나 된다. 1990년 최다 연승기록(41연승), 1992년 최연소 세계바둑대회 우승(16세·제3회 동양증권배), 1994년 최다관왕(13개 타이틀 획득) 등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돌부처’ ‘3중허리’ ‘신산(神算)’ 등 애정 어린 별명으로 많은 바둑팬을 확보하며 바둑의 저변을 넓힌 그였다. 한때 한중일 3국을 통틀어 최고의 기사로 팬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그가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세월 앞에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한국 바둑의 실력을 한 차원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 스승 조훈현 9단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이 9단은 이날 돌을 던지고 나서도 최 9단과 2시간 30분에 걸쳐 복기를 했다. 복기로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긴 시간이었다. 비록 오늘 졌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다짐이랄까. 또 이날 복기에는 랭킹 1위 이세돌 9단도 참여해 한국 바둑의 밝은 앞날을 예고했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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