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경직성 경비 빼면 가용재원 ‘마이너스’
비용 분담 복지비 늘어… 다른 지자체도 형편 비슷
서울시에 내년 ‘가용(可用) 재원’이 한 푼도 없는 자치구가 나왔다. 서울 은평구는 내년 예산 중 자체 투자 사업비가 전혀 없다. 경기 불황으로 세입이 줄어드는 반면 복지비 등의 경직성 경비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임남수 은평구 예산팀장은 19일 “업무추진비 행사경비 등을 대폭 삭감했지만 내년 세입으로는 경직성 비용을 대기도 부족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 이름만 ‘자치’구
은평구는 2011년 세입을 약 3155억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기초생활급여를 비롯한 각종 복지사업비 등에 1498억 원을 써야 한다. 인건비 1050억 원도 줄일 수 없다. 구청·구의회·동주민센터 운영비, 공공·민간위탁사업비, 교육기관 보조금, 도로·하수관·공원 등 도시기반시설 관리비용 등 줄이기 힘든 지출을 합치면 모두 3200억 원으로 내년 세입보다 45억 원이 많다.
이 때문에 은평구는 내년 자체 투자사업 예산 151억 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김우영 구청장이 공약한 ‘희망마을 만들기’ 사업에 필요한 26억6000만 원이 없다. 민선 4기 시절 시작된 다목적체육관 자연환경박물관 환경종합센터 건립비도 없다.
노원 중랑 강북구 등 재정자립도가 낮은 다른 서울시 자치구도 사정이 조금 나을 뿐 예산 부족은 마찬가지다. 다음 달 초 예산 편성이 완료되면 가용 재원이 ‘0’원인 자치구는 더 나올 수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도 예산을 긴축하는 와중에 자치구에 세입감소분 1517억 원을 보전해줘 지원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광역자치단체도 사정이 비슷하다. 경기도는 내년 가용 재원이 약 6400억 원으로 올해 8700억 원에 비해 26%가량 줄어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의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2조 원대 예산 규모와 70% 안팎의 재정자립도로 ‘부자 도시’인 경기 성남시 역시 내년에 쓸 수 있는 돈이 크게 줄어 1900억 원에 불과하다. 이재명 시장의 주요 공약인 옛 1공단 터 공원화 사업 등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 ‘매칭’ 복지사업비 증가가 원인
지자체 예산 부족의 원인으로는 세입 감소와 함께 국가가 비용 일부를 부담하고 지자체가 나머지를 부담하는 ‘매칭’ 복지사업의 증가가 꼽힌다. 은평구는 세출 가운데 국·시비 보조를 받고 구비를 더해 지출하는 사업이 130여 개에 이른다. 사업비도 올해 1216억 원에서 내년 1498억 원으로 23.2% 늘었는데 이는 예산의 46%에 이른다.
구비 부담 비율의 상승도 재정 악화의 원인이다. 은평구의 국비 보조금은 올 532억 원에서 내년 616억 원으로 15.8% 늘어난 반면 구에서 부담하는 돈은 262억 원에서 내년 324억 원으로 23.3% 증가했다. 내년에 시작되는 중증장애인기초장애연금은 국비 21억 원, 시비 14억 원이 투입되지만 구비도 6억 원이 새로 들어간다. 노인장기요양보험비용도 내년부터 40%(7억 원)을 부담해야 한다. 손희준 청주대 행정도시지적학부 교수는 “기초단체가 복지 재정을 떠안다 보니 지방의 특성에 맞는 사업을 벌이지 못하고 국가사무를 대신 집행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예산 쥐어짜기 돌입
지자체들은 긴축재정을 통해 경비 절감에 나서고 있다. 서울 도봉구는 ‘도봉산 축제’의 예산 5000만 원을 줄였다. 용산구는 프린터 필터와 복사용지, 업무차량 경비 등 사무관리비를 10∼15% 줄이고 있다. 경기도는 19일 본청과 산하기관 팀장급 이상 간부 400여 명을 한자리에 모아 자구책을 촉구하는 한편 국비매칭사업의 국고보조율 인상 등을 강력히 요구하기로 했다. 전액 자체 예산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던 성남시는 내년에 50%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경기도교육청과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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