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리안또입니다” 印尼 찌아찌아족 소년의 꿈같은 한국 나들이

  • 동아일보

“더 많은 한국 만나고 싶어요”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인 사리안또 군(오른쪽)이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ECC(이화캠퍼스컴플렉스) 내 강의실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이 마련한 이 수업에서 안또 군은 10여 명의 다른 외국 대학생과 함께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는 법을 배웠다. 김수민 인턴 기자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4학년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인 사리안또 군(오른쪽)이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ECC(이화캠퍼스컴플렉스) 내 강의실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이 마련한 이 수업에서 안또 군은 10여 명의 다른 외국 대학생과 함께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는 법을 배웠다. 김수민 인턴 기자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4학년
“따르릉. 전화 왔어요.”

“찰칵. 여보세요, 아비빈 선생님 계신가요?”

“아, 선생님은 지금 수업을 하고 있어요.”

150cm의 작은 키, 깡마른 몸, 여드름이 군데군데 난 16세 소년은 전화기를 잡은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리안또 군은 이어 허름한 나무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가리키면서 “‘디’것(이것)은 공책입니다” “저것은 연필입니다”라고 했다.

“마마 파파는 가끔 나를 보고 ‘안또,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인 줄 알겠다’고 했어요.” 한국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안또’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안또는 사리안또 군의 애칭. 그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주(州) 바우바우 시(市) 소라올리오 지구에서 산다. 이곳은 안또와 같은 찌아찌아족의 집성촌. 안또가 한국어를 배운 기간은 고작 10개월이지만 그의 한국어 실력은 또래 학생들에 비해 월등히 좋았다. 바우바우 시 제6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안또는 집에 돌아와서도 4∼5시간 방에 틀어박혀 한국어에 매달린다고 한다. 안또의 한국어 실력은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여서 기자도 깜짝 놀랐다.

27일 안또는 가슴 설레는 ‘특별한 외출’에 나섰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을 출발해 24시간을 비행한 끝에 안또가 도착한 곳은 한국. 안또는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와 여성가족부가 공동 주최한 ‘2010년 미래를 여는 아시아 청소년 캠프’에 특별히 초청받은 찌아찌아족 청소년 두 명 중 한 명이다. 그와 함께 바우바우 시 제6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니닌에르니아 양(16)도 함께 왔다.

안또는 출국장을 나서자마자 그를 맞이한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찌아찌아족 사리안또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을 건넸다. “나의 한국어 선생님은 한국이 지금 아주 덥다고 했어요. 근데 공항 안은 추워요” “한국은 아름다워요. 우리는 버스를 타고 호텔에 가나요?” 공항을 나오는 내내 안또는 쉬지 않고 ‘한국말’로 종알거렸다.

안또는 한국어가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변변한 한국어 교재도, 한국어-인도네시아어 사전도 없다. 지난해 12월 서울시 초청으로 한국에 다녀온 한 친구의 사전을 “두 날(이틀)” 동안 빌렸다는 그는 “사전만 있으면 한국어를 훨씬 더 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집 방문 옆에는 한글로 ‘나는 한국에 가고 싶다’고 적은 종이가 붙어 있다. 훈민정음학회에서 파견한 국어교사 정덕영 씨(49)는 안또의 집을 찾아갔다가 그 문구를 보고 가슴이 찡했다고 한다. “사전을 받아온 친구를 보고 무척 부러웠던가 봐요. 그래서 자기도 한국에 가서 사전을 받고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는 결심을 한 거죠.” 정 교사는 안또를 가리켜 “한국어에 반쯤 ‘미친’ 아이 같다”고 했다. “매일 아침 교문에 들어서면 안또가 기다리고 있다가 내게 말을 겁니다. 교무실까지 쫓아오면서 한국말로 무엇이든 이야기해요. 화장실에 가면 거기까지 쫓아와 ‘선생님은 소변을 보세요?’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정 씨는 혀를 내둘렀다.

올 4월 미래를 여는 아시아 청소년 캠프 주최 측으로부터 찌아찌아족 청소년들을 초청하고 싶다는 공문을 받았을 때 정 교사가 가장 먼저 안또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바우바우 시 제1, 2고등학교를 합쳐 총 250명의 아이를 가르치지만 안또만큼 내게 큰 감흥을 준 아이는 없었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직접 교장에게 가 ‘이 아이는 꼭 한국에 가야 할 아이다. 분명 더 업그레이드돼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죠.”

정 교사의 ‘강력한’ 추천사 덕분으로 안또는 전액 지원으로 한국에 갈 찌아찌아족 청소년 두 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발됐다. 평생 비행기를 타본 일도, 해외여행을 가본 일도 없는 안또는 이 기쁜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 행복해요. 우리 엄마, 아빠, 할머니 너무 행복하고 내가 자랑스러워요.” 안또가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가족들은 안또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인 26일 안또를 위해 작은 환송파티를 마련했다. “건강히 다녀오라”는 친구들의 격려도 이어졌다. “‘두’리(우리) 친구들이 좀 ‘사람이다(인간적이다)’”고 안또는 말했다.

28일 캠프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안또는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가방에 넣어둔 한글 책을 꺼냈다. 청소년 캠프에 초청된 23개국, 300여 명의 학생 대부분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날 오후 11시까지 한글 책을 읽었다. “선생님에게 물어볼 게 많아요. 나는 이 책을 다 알지 못했습니다.” 안또는 다음 날 한국어 선생님께 물어볼 질문을 꼼꼼히 메모했다.

안또는 청소년 캠프에 참가한 다른 학생들과 함께 29일 이화여대 언어교육원 수업에 갔다. 이곳에서 8월 2일까지 한국어 수업을 받는다. 안또는 방글라데시, 투르크메니스탄, 태국 등에서 온 한국어 전공 대학생 10명과 함께 한국어 고급반에 배정됐다. 고등학생 안또의 앳된 얼굴과 왜소한 몸집은 금세 눈에 띄었다. 안또가 “나는 ‘사리안또‘이라고’ 합니다”고 말하자 학생 몇 명이 “사리안또‘라고’ 합니다”고 고쳐주었다. 안또는 “아∼고맙습니다”라고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오전 수업이 끝난 뒤 안또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화여대 ECC(Ewha Campus Complex) 지하 4층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안또에게 왜 그렇게 한국어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한글 아니면 ‘두리’(우리)는 인도네시아 글자나 영어 알파벳을 사용해요. 찌아찌아 자음을 쓸 수 없어요. 한글은 쓸 수 있어요. 우리에게 문자가 생겨 행복하고 고맙습니다.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 돼서 더 많은 한국 만나고 싶어요.”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이미하 인턴기자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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