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편지/권태면]중남미까지 번진 대장금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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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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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편과 12세 아들이 있는 주부 나바로입니다. 대장금은 모두가 같이 앉아 대화하는 일이 없던 우리 가족을 매일 밤 모이게 한 드라마입니다. 시청자를 병들게 만드는 싸구려 연속극보다는 대장금처럼 동양문화를 알 수 있고 무언가 배울 수 있는 드라마를 계속 방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청자 다프네입니다. 대장금은 참으로 아름다운 드라마입니다.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프로그램이 많은 가운데 한마디로 사막의 오아시스 같습니다.”

얼마 전 중동의 이란에서 한국의 드라마 ‘주몽’이 대인기를 끌었다는데 요즘 중남미에서는 ‘대장금’이 국민의 안방을 후끈하게 달구고 있다. 중미의 작은 나라인 코스타리카의 국영TV는 스페인어로 ‘궁궐 안의 보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대장금을 지난해 11∼12월에 방영했다. 우리처럼 기기로 시청률을 조사하지 못하는 현지 방송국은 전화나 e메일을 통해 반응을 감지할 수 있다면서 방송국에 접수된 기록을 대사관에 한 묶음 보내왔다. 위의 글은 방송국에 날아든 수많은 e메일 중 일부이다.

방송국은 시청자 반응이 폭발적이고 전반부를 못 봤다는 사람들의 요청으로 2∼3월에 대장금을 다시 방영했다. 방영권을 돈으로 지불할 능력이 못 되어 미안하니 대신 한국에 관한 홍보라도 해주겠다면서 한국의 결혼식 장례식 한복 한식 한옥 도자기 태권도 등 전통과 문화는 물론이고 전쟁 후 발전상과 산업 등 한국을 소개하는 내용을 20여 개나 만들어 매일 드라마 시작 전에 2분씩 방영했다. 하루에도 몇 분씩 수개월간 밤낮으로 한국을 알린 셈이니 광고비로 쳐도 상당한 것 같아 뿌듯하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매료시켰는지 물어보니 한마디로 너무나 독특하기 때문이란다. 즉 한국의 역사 주거 의복 음식 궁중생활 서민생활을 알 수 있어 좋았는데 매우 이국적이어서 말로만 듣던 한국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보았다는 얘기였다. 또 사랑 배반 갈등이 대부분이어서 시청자를 식상하게 하는 중남미의 멜로드라마, 스페인 말로 소위 ‘눈물짜기 드라마’와는 달리 스토리가 교훈적이고 아름답기 때문이란다. 음악을 좋아하는 시청자는 한국의 독특한 음률과 음색이 서린 드라마의 배경음악을 따로 구할 수 없느냐고 대사관에 문의했다.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가 이렇게 먼 중남미에까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이 안 된다. 아직 몇 편밖에 소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팬까지 생겼다. 얼마 전에는 이곳 동호인끼리 만든 ‘Korea Fan Club’이라는 모임의 회원들을 만났다. 비디오나 인터넷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한국영화를 본다는데 외국인에게는 외우기도 어려운 수많은 한국의 배우 이름과 내용을 줄줄 꿰는 데에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한류라는 문화의 물결이 아시아를 넘어 먼 중남미 대륙까지 뻗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의 전파 속도가 극도로 빨라진 세계화의 덕분이기도 하다.

세계화 시대에는 정체성이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이 나라 사람들이 대장금에 매료된 이유는 가장 한국적인 내용, 즉 다른 나라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함 때문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서구 영화만 종일 하는 케이블 방송이 즐비한 상황에서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한국작품으로 앞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이곳 극장에서 임권택 감독의 작품을 보여줄까 한다.

권태면 주코스타리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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