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편지/윤상철]‘원조 외교’ 강소국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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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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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에티오피아에 대해 물어보면 제일 먼저 답하는 것이 무엇일까. 대부분은 에티오피아를 뒤덮었던 기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We are the world’라는 노래로 널리 알려진 에티오피아의 기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커피 마니아라면 커피의 원산지 또는 예가체프 커피를 말할 것이고 올해가 6·25전쟁 60주년을 맞는 해라는 점을 떠올리는 이는 유엔 참전국 16개국 중 하나라고 할 것이다.

외교적 측면에서의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외교의 중심지이다. 미국 워싱턴, 벨기에 브뤼셀 다음으로 대사관이 많은 나라이며 아프리카연합(AU) 본부와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UNECA) 본부가 위치한 나라이다.

아프리카 외교의 중심지라고는 하지만 워싱턴, 브뤼셀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여기 사람들은 이곳을 ‘원조 외교의 중심지’라고 표현한다. 국제사회의 질서와 경제를 논하는 국제 외교의 장이 아니라 아프리카로 들어오는 원조 창구로서의 중심지라는 말이다. 선진국으로부터 어떻게든 원조를 더 받아 가려고 경쟁하는 아프리카 국가 간의 눈물겨운 외교 각축장이 이곳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이다.

우리와 멀다고 느껴졌던 이곳이 새롭게 부각되는 것은 대한민국이 선진국 클럽인 원조 공여국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원조 공여국 가입 시 필자는 이미 에티오피아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분위기는 알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한 계단 올라선 것이 확실하다. 가끔 유엔에서 국제 비정부기구(NGO)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젠 대한민국을 아프리카의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말을 건네곤 한다.

아프리카 국가가 한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원조 공여국으로서 대한민국은 어떠한 모습을 보여야 할까. 필자가 근무하는 일 자체가 대한민국 원조사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병원 옆에 독일의 원조를 받아 지은 멋진 병원이 하나 있다. 이 병원의 외관은 필자가 의대생 시절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던 베를린의 훔볼트 의과대학 병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서 그 실태를 봤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병원에서 당연하게 이뤄져야 할 위생관리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세탁세제로 수술기구를 세척하고, 손빨래로 피고름이 묻은 리넨을 빨고 병실 안에서는 보호자들이 석유화로를 가져다가 환자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에게 소독기와 세탁기를 사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계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사용하는 이들이 사용법과 운영기술을 배우지 못해 기계는 금방 고장 나버리기 일쑤다. 그 때문에 다시 누군가가 기계를 또 원조해 줄 때까지 옛날 방법으로 돌아가 버리는 악순환이 개원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참된 원조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매일 출근할 때마다 든다. 특히 필자의 병원과 옆 병원을 같이 바라볼 때는 더더욱 그 질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물질에 의존한 원조는 현지 사람들로 하여금 원조에만 기대게 할 뿐이어서 일종의 마약과도 같다. 진정으로 원조받는 국가와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는 인적개발 원조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곳 병원에 올바른 병원 운영 방식을 습득하게 하고 권위적 태도 대신 병원 서비스와 환자 만족도라는 개념을 가르쳐 치료 받으러 오는 모든 환자가 제대로 보살핌을 받고 미소 지으며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환자들은 화려한 병원을 지은 독일보다 허름한 에티오피아 정부 병원에 깃든 대한민국을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원조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또 하나의 ‘강소국(强小國)’의 모습이 아닐까.

윤상철 KOICA 에티오피아사무소 협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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