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편지/이용규]보행자 안전이 최우선인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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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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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도시에는 보행자가 길을 건너도록 육교나 지하도를 여기저기에 설치했다. 이곳 유럽에서는 육교나 지하도를 거의 볼 수가 없다.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기 때문일까. 유럽에서는 오히려 보행자를 더욱 배려하기 때문에 육교나 지하도를 설치하지 않는다. 그 대신 쉽게 길을 건너도록 길가에는 횡단보도가 많다.

길가 곳곳에 횡단보도가 많아서 운전자는 시내를 주행할 때면 짜증이 난다. 다만 유럽의 횡단보도 신호등은 보행자가 스스로 버튼을 눌러야만 신호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없을 때에는 보행자가 건너는 신호가 들어오지 않는 신호등이다. 이런 신호등을 통해 이용하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차량에 우선권을 준다.

유럽의 교통체계는 여러 면에서 보행자를 배려한다. 예컨대 시내의 도로는 대개 1차로 혹은 2차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처럼 3차로 또는 4차로의 대형 도로는 찾아볼 수 없다. 도로를 좁게 만들면 여러모로 차량보다는 보행자에게 유리하다. 도로가 좁아서 차가 빨리 달릴 수도 없다. 또한 신호등을 만들기도 쉽고 사람이 길을 건너는 데에도 위험하지 않으며 건너는 시간도 적게 소요된다.

한편 이곳 도심의 도로나 횡단보도 곳곳에는 무인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차가 신호를 위반할 때에는 어김없이 적발한다. 도시에서의 제한속도는 대개 시속 50km인데 이를 위반하여 카메라에 찍히면 50유로(약 10만 원)의 벌금 고지서가 배달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택시를 타고서 목적지에 빨리 가자고 재촉해도 택시운전사는 50km 이상 달리지 않는다. 특히 횡단보도 신호를 위반하면 벌금뿐만 아니라 면허정지를 당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한국의 총알택시도 곳곳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하면 사라지리라고 생각한다.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는 보행자 전용도로도 곳곳에 있다. 특히 시내의 중심가나 관광명소가 있는 곳에는 보행자용 도로가 길게 늘어섰는데 거기에는 자전거도 들어가지 못한다. 보행자 전용도로 주변에는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있는 것이 보통이며 시민이 쉴 수 있는 의자와 분수를 설치했다.

또한 대도시에서는 차량도로와 보행도로 간에 분리막대를 설치한 곳이 많다. 차량이 보행도로에 걸쳐서 주정차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국에서는 도시 곳곳에서 차가 인도까지 점령해 주차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곳에서는 도로분리대 때문에 원천적으로 주차가 불가능하다. 또한 분리대를 통하여 차량으로부터 보행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한편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거리의 차량 신호등을 차량이 교차로를 건너기 이전 지점에 설치했다. 따라서 차는 교차로의 한참 전에서 운행과 정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빨간 신호등이 들어오면 차량은 횡단보도 이전 지점에서 정차해야 하므로 사고의 위험이 적다. 만약 우리처럼 사거리 신호등이 교차로를 지나 길 저편에 있으면 차량은 먼 곳에 있는 신호를 보고 무리하게 주행하므로 사고의 위험이 크다.

이 외에도 보행자 중심의 교통체계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사거리에서 차량이 우회전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파란색 신호에만 가능하다. 이 역시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배려한 결과다. 한국에서는 신호등의 점멸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아 성인 남자도 빨리 걸어야만 건널 수가 있다. 이곳 횡단보도의 신호 시간은 우리의 두 배 정도는 된다. 그래서 어린이나 노인도 여유롭게 길을 건널 수가 있다.

이용규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 사무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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