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터디/영화, 생각의 보물창고]사이코(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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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를 찔러라 뒤집어라”
새 영화문법 ‘역발상’의 탄생


《앨프리드 히치콕(1899∼1980) 감독을 아시는지요?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는 50여 편의 영화를 통해 후대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이창’(1951), ‘현기증’(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사이코’(1960), ‘새’(1962) 같은 작품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문제작으로 손꼽히지요.
요 즘 할리우드에서 생산해내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는 거의 모든 작품에 이 히치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히치콕은 엉뚱한 짓을 잘하기로도 유명합니다.
키 작고 통통한 히치콕은 자신의 영화 속에 행인이나 문지기 등으로 슬쩍 모습을 드러내는 ‘카메오’ 출연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그는 자기 영화에 매혹적인 금발 여성들을 등장시킨 뒤 그들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자주 보여주었는데요. 젊은 시절, 금발 미녀들에게 구애했다가 줄곧 거절당하고 상처를 받았던 그가 이런 장면을 통해 그녀들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 궁금 하지 않으세요? 도대체 왜 히치콕을 이리도 높게 평가하는지 말이지요.
알고 보면 그의 영화 속엔 과거의 영화감독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기발한 역발상(逆發想)이 도사리고 있답니다. 히치콕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사이코(Psycho)’를 통해 그의 놀랄 만한 역발상을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1] 스토리라인


부동산 회사의 여직원 마리온(재닛 리)은 회사 공금 4만 달러를 챙겨 도주합니다. 그녀는 허름한 베이츠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지요. 이 모텔의 친절한 주인 노먼(앤서니 퍼킨스)은 자신이 모텔 바로 뒤에 있는 빅토리아풍 저택에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모텔 욕실에서 샤워를 하던 마리온은 갑작스레 다가온 누군가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합니다. 잠시 뒤 마리온의 시체를 발견한 노먼은 시체와 그녀의 소지품을 모두 그녀가 몰고 온 자동차에 넣은 뒤 자동차를 연못에 밀어 넣음으로써 사건을 은폐하지요.

마리온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지자, 보험회사는 사립탐정 아보가스트를 고용해 마리온의 자취를 쫓습니다. 마리온이 베이츠 모텔에 묵었다는 사실을 급기야 밝혀낸 아보가스트. 그는 노먼의 어머니를 의심하면서 그녀가 살고 있는 저택에 잠입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한 할머니에 의해 난자를 당해 죽고 마는데….

[2] 생각 키우기


이 영화가 개봉된 건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관객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연쇄살인범은 노먼의 어머니가 아니라 노먼 자신이었다니 말이지요! 모성고착증(어머니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노먼은 이미 8년 전 숨진 어머니의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보관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어머니라고 여기는 다중인격자였습니다. 어머니의 옷과 가발을 착용한 채 자신이 어머니가 되었다는 착각 속에서 지금껏 살인행각을 벌여온 것이지요!

어떤가요? 정말 몸서리처지면서도 기발한 착상이지요? ‘살인자는 언제나 괴물적인 타자(他者)’라고만 생각해온 당시 관객들은 ‘살인범은 내 안에 있다’는 이 영화의 충격적이고도 참신한 설정에 넋을 잃고 말았지요. 이런 설정은 어찌나 기발하게 여겨졌던지, 수십 년이 지난 최근에도 ‘아이덴티티’(2003) ‘숨바꼭질’(2005) ‘셔터 아일랜드’(2009) 같은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를 통해 거듭 차용되고 있답니다.

자, 그럼 이 영화의 놀라움은 여기서 끝일까요? 아니에요.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히치콕 감독은 우선 마리온 역에 재닛 리(아니나 다를까. 이 배우도 금발미녀랍니다)라는 유명 여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관객의 뒤통수를 칩니다. 아니, 재닛 리를 캐스팅한 게 무슨 놀랄 일이냐고요? 생각해 보세요. 당시 33세였던 재닛 리는 최고의 섹시 여배우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할리우드의 앤젤리나 졸리나 국내의 김태희쯤 되는 배우였지요. 그런데 이런 매혹적인 주연급 배우가 영화가 시작한지 30분 만에 샤워를 하다가 죽다니요! ‘재닛 리는 주연급 배우이니 절대로 죽을 리가 없어’ 라고 생각했던 당시 관객들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주연배우가 나오자마자 죽다니…. 여러분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드라마 ‘아이리스’에 출연한 김태희가 드라마 3회째에서 죽는다고 말이지요. 정말 황당하지요?

그렇습니다! 히치콕 감독은 이런 설정을 통해 관객이 가진 오랜 고정관념에 ‘똥침’을 날렸어요.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영화적 환상(판타지·fantasy)을 여지없이 파괴해 버린 것이지요. 생각해 보세요. 어쩌면 이런 장치야말로 진정한 리얼리티(reality)의 세계가 아닐까요? 나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 신이 아니고선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진짜’ 운명이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당시 관객들은 재닛 리가 난데없이 살해당하는 이 장면을 마주하면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현실’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어요.

관객의 허를 찌르는 히치콕의 역발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히치콕은 살인이 일어나는 장소로 전대미문의 장소를 선택함으로써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지요. 그 장소가 어디냐고요? 바로 ‘샤워실’이랍니다. 자, 샤워실에서 살해를 당하는 장면이 당시 관객들에겐 왜 충격으로 다가왔을까요? 샤워실을 살인 장소로 설정한 것이 도대체 왜 역발상일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이 다음 편 ‘영화, 생각의 보물창고’(시즌4)를 통해 이어집니다.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zstudy.co.kr sjda@donga.com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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